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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5. 2022

있음과 없음의 사이, 그 비워진 충만함

유지승의 도덕경 읽기 2022년 1월 14일 

6장

사타구니 사이의 그 신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신묘한 어머니라 합니다. 신묘한 어머니의 그 문, 그것은 천지만물의 근원이 됩니다. 그리고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용하여도 마르지 않으며 말입니다.  

六.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육.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풀이: 이런저런 현대의 철학으로 풀이하기도 하고 음양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저의 눈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가장 먼저 그렇게 보입니다. 모든 여인이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여인은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에 의하여 우린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은 설령 그가 고아라 자라 생물학적 부모를 알지 못한다 해도 그는 누군가 어느 어머니에게서 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모든 생명을 품어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그 문, 생명의 문, 바로 그것은 어쩌면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하여도 그대로 신비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주 역시 존재의 문을 가집니다. 비록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생식기와 같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이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이 되는 어떤 것이 있으며 바로 그곳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온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고 길가의 잡초나 심지어 길가의 돌덩어리조차 말입니다. 그 존재의 문에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문은 큰 소리로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도 않고 그렇게 묵묵히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품어 세상에 내어놓으며 있습니다. 여인의 자궁이 비워져 있듯이 그곳이 아무것도 아닌 텅 비어 있는 무엇으로 있기에 모든 것을 품어 세상에 내어놓는 힘의 자리가 되듯이 어쩌면 우주 모든 존재의 문 역시 그와 같을 듯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텅 비워져 있는 그 무엇, 즉 무엇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 그 무엇, 그 무엇이란 말로도 담아낼 수 없는 것, 무엇으로도 부르지 못하고 담아내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는 그 무엇,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있는 바로 그것,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있어 우리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내가 이 모두의 어머니다” 소리치지도 않으며 있는 듯 없지만 없는 듯 있는 바로 그것,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날이 좋으면 마을 옆을 흐르는 금호강을 찾아 앉아 있곤 합니다. 저에겐 참 좋은 시간입니다. 어느 날 늦여름인지 가을인지… 앉아 흐르는 금호강을 보는데 옥잠이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흐르는 강은 아무 말 없이 옥잠을 품고 그 사이 작은 물벌레들을 품고 또 큰 물고기들도 품고… 강가 제법 큰 나무들도 품고 있습니다. 그 강을 바라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자기소개 내지 않고 모두를 품어 내는 우주의 어머니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금호강보다 더 아무 말 없이 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로 우리 존재의 뿌리로 있겠지요. 텅 빈 채로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의 사이, 그 갈라진 틈, 그 문이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텅 빈 채로 있지만 가득한 기운이 있는 있음과 없음의 사이, 그 갈라진 틈,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 

2022년 1월 14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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