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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5. 2022

어찌 바르게 살지 물었다.

유지승의 금강경 읽기 2022년 1월 15일

어찌 바르게 살지 물었다.     

2. 善現起請分 선현기청분

時 長老 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希有世尊.

시 장로 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희유세존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뇩 多羅三먁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善男子 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 세존 원요욕문     


2.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하였다.

그때 장로 수보리가 사람들 가운데 있다가 곧 일어나 웃옷을 벗어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무릎을 바닥에 꿇어 합장 공경하며 부처께 물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보호하셨고 또 잘 당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착한 남녀가 더 높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참된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어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좋습니다. 수보리여. 당신의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보호하고 잘 당부합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당신을 위해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착한 남녀가 더 높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참된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이와 같이 살아가며, 이처럼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풀이: 묻습니다. 선생은 같이 궁리하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그저 홀로 강단 앞 높은 자리에 앉아 질문 없이 있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암기하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철학에서 좋은 선생은 기쁘게 질문을 받고 기쁘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좋은 제자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궁리하기 위해 모인 그 자리에 충실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기뻐하며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또 기뻐하며 듣는 것이 참 아름다운 교실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만이 능동이고 제자만이 수동인 것이 아니라, 제자의 수동이 능동이고 선생의 능동이 수동인 그러한 공간, 서로 더불어 서로의 있음에 충실하지만 어느 하나만이 홀로 그 자리의 주인이 아닌 그런 공간, 지금 그런 공간이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철학이란 어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궁리함입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는 진도표에 따라 진행되는 틀 속 그 무엇이 아니라, 이와 같은 질문과 답 그리고 그 답이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오는 대화의 장에서 익혀져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화입니다. 철학은 대화 속에서 시작되고 돌아가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궁리되고 결국 각자의 삶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입시 교육에 익숙하고 진도표의 속도에 익숙한 우리에게 서로 주고받으며 다시 받고 주는 이러한 대화의 철학은 참 먼 이야기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찌 바르게 살지 물었습니다. 이제 저도 기쁘게 저의 귀로 듣겠습니다.

2022년 1월 15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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