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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4. 2022

안양(安養)

안양(安養)     

‘천국(天國)’이 하늘에 있지 않듯 ‘서방정토(西方淨土)’ 역시 서방에 있진 않을 것이다. 어떤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곳에 있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늘을 아무리 찾아도 그리고 서쪽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우린 천국과 서방정토를 찾진 못할 곳이다.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정토(淨土)’란 부처가 사는 곳이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은 ‘깨끗한 곳’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부처는 ‘깨끗한 곳’에 산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무엇에서 깨끗한지 그것이 참 중요하겠다. 그것만 내 삶에서 치운다면 내가 사는 바로 여기도 부처가 산다는 그 ‘깨끗한 곳’이 될 것이니 말이다. 내가 사는 여기도 ‘정토’가 될 것이니 말이다.      

‘부처’는 ‘깨달은 자’란 말이다. 그는 무엇을 깨우친 사람일까? 바로 우리의 아집(我執)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깨우친 사람이다. 우린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것은 살아있는 것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이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으로 힘들어한다. 괴로워한다. 그러면 그 삶이 괴롭다. 영원히 나의 것은 없다. 나 자신도 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편에서 생각하면 내가 없던 시간은 수십억 년이며, 그동안 나의 없음은 당연했다. 아주 잠시 살다 죽는다. 그 이후 수십억 년 동안 나의 없음은 또 당연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주의 편에서 생각하면 나란 존재는 없던 것이 더 오랜 시간 더 당연했었고 앞으로 당연해질 것이다. 이 세상 전부일 것 같은 나란 존재도 결국 그렇다. 지구도 우주의 편에선 먼지이고, 나란 존재는 그 먼지의 먼지와 같은 존재다. 그것이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영원하지 않으며 정말 별것 아닌 먼지의 먼지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먼지의 먼지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나란 존재가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쁘다며 나누고 더 좋은 것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싸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싸운다. 더 강해지기 위해 싸운다. 참 웃긴 이야기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먼지의 먼지인 존재인데 말이다. 천국이 정말 하늘에 있는 줄 아는지 교회나 성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그리고 그 먼지의 먼지들끼리 만든 교리를 들고 서로가 지옥 갈 이들이라며 싸운다. 어찌 보면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서로 저주하며 싸우는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다. 더 좋고, 더 높아지고,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지옥을 만든다. 아집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들고 나를 ‘마구니(魔仇尼)’로 만든다. 불안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또 싸우게 한다. 심지어 그 마음을 가지고 신을 찾아 자신이 남을 이기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게 올라가며 더 강하게 만들어 달라 기도한다. 참 서글프다. 신에게 이곳은 더 지옥으로 만들어 달라하고 자신은 더 나쁜 마구니로 만들어달라 한다. 참 서글프다.     

부처는 바로 이 서글픔이 무엇인지 깨우쳤다. 어찌 그것을 사라지게 할지를 깨우쳤다. 아집, 바로 그것만 버리면 그 많은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정토는 바로 그 아집이 없는 곳이다. 아집으로부터 깨끗한 곳이다.      

‘안양(安養)’이란 말이 있다. 흔히 ‘극락(極樂)’이라 부리기도 하고 ‘정토’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마음을 안정시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진정 참된 것을 받아 드릴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을 안양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마주 할 수 있는 곳, 나 자신이 먼지의 먼지이며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우친 곳, 아집이 깨끗하게 치워진 곳, 바로 그곳이 안양이다. 그렇다면 아집에서 벗어난 내 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 바로 이것이 안양이고 그 가운데 다시 태어난 극락왕생(極樂往生)한 ‘나’라고 하겠다.      

안양, 결국 내 아집에서 벗어난 바로 그곳이구나 싶다. 그 마음이 바로 정토구나 싶다.     

2022년 1월 14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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