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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7. 2022

성법(聖法)

성법(聖法)     

어린 시절 나는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참 많이 읽었다. 아버지와 내 마음이 드는 ‘성경’을 찾아 구하기 위해 대구 곳곳의 기독교 서점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승용차가 없던 집이라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앉아 그렇게 서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산 성경책은 이후 내가 집사가 될 때까지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언젠가 <요한복음서>의 한 부분을 거의 다 암기하기도 하였다. 몇 장까지 암기하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왜 그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성경’의 구절을 참 많이 좋아하고 가까이에 두었다. ‘성경’의 원래 말이 궁금해 아무도 권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헬라어 교재를 사 공부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어느 날 교회에 큰 싸움이 났다. 서로 물풍선 폭탄을 던지고, 듣기 민망한 욕으로 저주하였다. 서로를 악(惡)이라면서 말이다. 참 서글프게도 그들의 손엔 하나 같이 ‘성경’이 들려있었다. 그 이후 손에 성경을 든 목사의 민망한 일들은 여기저기에서 직접 보았다. 가톨릭 교회를 다니게 된 이후, 성당 사람들 역시 교회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교리대로 기도문을 외우고 미사에 참석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한다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참 서글픈 광경을 보곤 하였다. ‘성경’을 읽는다는 게 무엇일까? 고민이 들었다. 불심이 대단하다는 어느 사장님은 직원에게 참 나쁜 사람이었다. 마음에 상처 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리곤 불교 방송에 나오는 불경 풀이 방송을 보면 깊은 묵상에 잠기곤 했다. ‘불경’을 읽는다는 게 무엇일까? 항상 <논어>와 <중용> 그리고 <대학> 등을 가까이에 두며 나에게도 권하던 어느 할아버지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참으로 독하게 훈계하였다. 우선 그의 앞에선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돌아서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를 그런 시간이 참 많았다. 과연 유교의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법(聖法)’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성현 혹은 성자(聖者)의 법(法) 혹은 가르침이란 말이다. 어떤 종교인가를 떠나 많은 성법이 담긴 경전이 있다. 그 경전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답을 지시하고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혹은 구체적인 답을 우리에게 암기하라 하고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금 질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아니, 우리가 고전(古典)이라 믿는 책들은 바로 그러한 책이 아닐까. 이렇게 살라고 구체적인 답을 내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런저런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하곤 지금 너의 그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질문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 그 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서로 다른 조건에 따라 다르게 될 수 있다. 오답에서 정답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상황에서 궁리한 정답에서 또 다른 상황에서 궁리한 정답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오답은 아니다. 굳이 오답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아집(我執) 속에서 만들어진 답, 바로 그것일 것이다.      

경전과 고전은 우리에게 지식을 전하는 글이 아니다. 그 오랜 과거의 지식은 많은 경우 더는 유용한 지식이 아니다. 그러나 지혜는 다를 수 있다. 과거 의학책이 나오는 지식으로 지금 우리를 치료하진 못한다. 한다 해도 지금 의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 고전 속 지혜는 다르다. 그 지혜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용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린 정말 제대로 그 경전과 고전을 읽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성경, 불경 그리고 유교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내용을 암기하고 배워도 그 질문에 자기 답이 없다면, 결국 자기 아집 속에서 만들어진 삶을 살 뿐이다. 성법, 오늘 경전이나 고전을 읽는다면 그 질문을 두고 고민해 보자. 참 고마운 시간이 될 것이다.      

2022년 1월 17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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