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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20. 2022

하늘이 사는 길을 따라

유지승의 도덕경 읽기 2022년 1월 20일 제주에서

9장

계속 채우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멈추는 것 만 못합니다. 갈아서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하질 못합니다. 금과 옥으로 집을 가득 채우면 그것을 지킬 길이 없습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놓다 교만을 부리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뿐입니다. 무엇을 이루어도 자신은 뒤로 물러라는 것이 바로 하늘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九.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구. 지이영지, 불여기이, 췌이예지, 불가장보. 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


풀이: 자기 자신의 답만 정답이라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답만 정통이라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삶에서 저마다 이룬 저마다 서로 다른 그 많은 풍성한 답들을 모두 오답이라며 무시해 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라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집이 자부심인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에서 말입니다. 자기 방식으로 구원을 이룰 뿐이며 다른 길은 아예 모두 오답이라 단언해 버립니다. 한때는 자신과 다르면 불에 태워 죽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자신과 다르면 오답이라 낮추어 버리는 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참 차갑습니다. 말로는 사랑이라 이야기하지만 자기 자신만 답이라는 아집으로 가득 차 있으니 사실 남을 위한 남의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자신과 다른 종교는 그저 오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그들과 공존을 궁리하기보다는 그들을 자신의 종교로 만들 생각만을 합니다. 칼을 갈고 갈아서 그들의 종교를 무찌르고 자신의 종교를 심을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의 사랑입니다.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룬 그들의 답, 그들의 아픈 삶을 안아주고 위로해준 그들의 답을 무시하고 자신의 답으로 채워버리는 것이 그들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항상 칼을 갈며 자신과 다른 답을 죽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답만을 강요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답을 거부하는 이가 있으며 그 칼로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때론 신학이 철학이 바로 그 칼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면서 막상 배고프고 힘든 이들을 돌아보진 않습니다. 그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금고에 돈을 채우기 바쁩니다. 거대한 병원을 경영해도 그저 돈만 벌 생각뿐입니다. 큰 종교 건축물이 있어도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하여 내어 줄 공간은 없습니다. 그저 생생 내기 위해 작은 공간을 잠시 내어줄 뿐입니다. 종교 권력자는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공간에서 화려하게 신을 부릅니다. 그곳이 신의 자리라면서 말입니다.


신, 즉 하늘은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하늘이 살아가는 그 길은 모든 생명을 품으면서 스스로 자신을 앞자리로 올리며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무엇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할 뿐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지만 모든 것의 뒤에서 아쉬운 마음 하나 없이 있는 것이 하늘입니다. 그것이 신입니다. 신이란 그러한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란 아집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엔 신이 없습니다. 신은 서로 다른 여럿, 그 풍성한 답을 모두 품으며 모두에게 비를 내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풍성함의 긍정이 신의 참모습니다. 돈으로 세워진 화려한 건물 속 화려한 옷으로 신을 부른다고 그곳에 신이 있지 않습니다. 신은 눈에 보이는 높은 자리, 화려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늘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듯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며 가장 낮은 자리의 모두를 품어 그들 모두에게 희망의 자리, 생명 뿌리의 자리에 있는 것이 신입니다.


하늘은 아집과 욕심으로 가득히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향한 칼을 가는 존재도 아닙니다. 화려한 높임에 만족하는 이도 아닙니다. 신학이나 철학, 어쩌면 자신의 정답만을 고집하며 그 고집 속에서 남을 조롱하고 남을 무시하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2022년 1월 20일

제주에서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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