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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23. 2022

색탐(色貪)

색탐(色貪)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니 사라질 것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쩌면 이 당연한 상식을 피하기 위한 오랜 시간 그 많은 종교와 철학이 어렵고 복잡한 이 세상 밖의 이야기를 그리고 길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것이 진리(眞理)다. 길고 긴 어떤 학설도 결국 우주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의 또 다른 잠시일 뿐이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모두는 사라진다. 어쩌면 더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은 절멸(絶滅)의 세상이 올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 절멸의 세상이 당연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나 없던 길고 긴 시간, 나의 없음은 당연했고 나 없을 길고 긴 시간, 나의 없음 역시 당연할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이 당연한 이치를 피하지 않으면 세상은 참 고요해진다. 굳이 무엇을 욕심낼 필요가 없다. 그 욕심의 주인인 나도 그 욕심의 대상인 그 무엇도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의 자식도 그 자식의 자식도 결국 다르지 않다. 모든 존재는 소멸 앞에 가능한 그 무엇일 뿐이다.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애씀도 결국 모두 헛일이다. 오히려 치열하게 산다며 소유욕(所有慾)의 삶을 가르친다면 자식에게 독한 전염병(傳染病)을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집(我執)이란 병 말이다. 이기고 살라는 말, 지지 말라는 말, 무서운 말이다. 이겨도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한다고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그 아집 속에서 혹시나 무너지고 빼앗길까 미래가 두려울 수 있고, 그 아집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위선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아집 속에서 독해지고 독해져 남에게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독이면서 말이다.      

‘색탐(色貪)’이란 말이 있다. 색계(色界)의 사물에 대한 욕심을 두고 부르는 말이다. 참 무서운 욕심이다.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 큰 목마름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더 깊이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욱더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된다. 병(病)이다. 몸을 죽음에 이르게 하진 못해도 그 마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자연히 평화롭게 사라지는 게 너무나 당연히 사라질 존재에게 가장 좋은 건강한 삶의 모습이다. 아집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애쓰며 치열하게 자신과 남에게 독이 되어가며 괴롭게 살다 죽는 것이 불행이다. 색탐은 그 불행의 이유다. 그 병의 원인이다. 지금도 버릴 것이 많다. 버리고 또 버린다. 기억하자.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나의 존재 자체도 때가 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 당연한 진리 앞에 가장 자연스러운 삶은 버리고 버리며 나누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건강하게 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22년 1월 23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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