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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27. 2022

탐착(耽著)

탐착(耽著)     

더 큰 집과 더 유명 자동차에 집착(執着)한다. 그것을 가지게 되면 남에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건설사의 같은 아파트인데도 값이 같지 않다. 더 좋은 학군이며, 더 많은 부자가 사는 더 비싼 동네의 아파트가 더 비싸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 그것에 살 돈이 없으면 조금이라도 그 비슷한 곳에 살려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은근히 서로를 나눈다. 더 높고 더 낮은 사람으로 나누고 더 강하고 더 약한 사람으로 나눈다. 그리고 은근히 무시(無視)하고 차별한다.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자랑하며 부러워하는 이의 시선을 즐긴다. 원래 아무것도 아닌 우주의 먼지와 같은 존재들이 서로를 나눈다. 우주의 역사에서 보면 찰나(刹那)의 순간을 사는 이들이 서로를 나눈다. 그리고 못된 기쁨을 즐긴다.      

어느 대학에서 공부했다 말하는 것이 그저 출신 대학을 말하는 게 아닌 사회를 산다. 어느 동네에 산다고 말하는 것이 그저 사는 곳을 말하는 게 아닌 사회를 살고 있다. 그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하고 폭력이 존재한다. 나의 벗은 중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다. 그러나 조금도 나쁘지 않은 벗이다. 어린 시절부터 최선을 다해 식당에서 일했고, 지금도 힘들지만, 너무나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중졸이다. 중졸이란 말, 그 말은 그저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말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도 차별이 존재하고 폭력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시절, 부동산 이야기를 하던 선생이 나에게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물었다. 나는 답했다. 그러자 선생은 나를 판자촌에 살던 아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록 사실을 말했지만, 모든 반 친구들이 듣는 자리에서 지리 선생의 그 농담은 나에게 폭력이었다. 그렇게 그 선생은 나를 친구들과 나누었다. 그것은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잔혹한 폭력이었다.      

‘탐착(耽著)’이란 말이 있다. 그릇된 것에 집착함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학벌에 집착하면 자신도 힘들고 남도 아프게 한다. 어디에 사는가에 집착하면 그 역시 자신도 힘들고 남도 아프게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괴로움의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탐착에 빠져있다. 학벌에 집착해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무시한다. 부동산에 집착해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무시한다. 그리고 사람을 나눈다. 그리고 나쁜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기 위해 공부하고 일한다. 찰나의 순간을 살다 사라지는 우주의 먼지와 같은 존재가 그렇게 서로를 나누고 서로를 아프게 한다. 탐착, 지금이라도 벗어나야겠다.      

2022년 1월 26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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