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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07. 2022

비워짐의 쓸모

유지승의 도덕경 읽기 2022년 2월 7일

11장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꽂혀 있으나  그 가운데 비워진 것이 있어 쓰임이 있습니다. 찰흙으로 그릇을 빚어 만들 때도 그 그릇에 비워진 것이 있어 쓰임이 있습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들 때도 그 비워진 것이 있어야 방의 쓰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쓰임 때문입니다. 


十一.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십일. 삼십폭공일곡, 당기무유차지용. 연식이위기, 당기무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풀이: 그릇은 비워져 있어 제대로 있게 됩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있을 때 제대로 있는 것이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항상 무엇으로 있으려 노력합니다. 애를 씁니다. 무엇으로 채우고 채워야 덜 불안하지만 그렇게 채우면 채울수록 더 불안한 것은 어찌 된 일일까요? 채우고 채우면 덜 채우진 부분만 보이고 다 채웠다 생각하면 누가 덜어 갈까 불안한 것입니다. 


있음만 생각하고 더 있으려 욕심을 냅니다. 아집이란 그런 것입니다. 더 있으려 하고 더 단단하게 있으려 합니다. 없어지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린 원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우리가 무엇으로 있는 시간보다 더 깁니다. 우리가 없던 시간은 거의 영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곧 죽어 사라지면 우린 다시 너무나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집니다. 


빈 그릇은 자유로이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다시 비울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빈 그릇을 술로 가득 채우고 조금도 비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릇도 아닙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쓸모는 비워진 자리에서 가능합니다.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쓸모에서 가능하단 말입니다. 


무엇이든 채우려는 욕망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종교도 말로는 가난을 이야기하지만 가난을 실천하는 종교는 많지 않습니다. 종교와 관련된 많은 뉴스들이 결국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도 온전히 비워진 마음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신이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도 서로 비워진 마음에 서로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으로 가득한 아집에 공간은 신은 물론이고 사람이라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쓸모도 없고 한없이 외로워져 가는 괴로움이 될 뿐입니다. 


2022년 2월 7일

유지승 옮기고 풀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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