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생계를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일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주는 것은 그 이상의 성취감이다. 오늘 하루도 내 몫을 다하고, 잘 버텨냈다는 안도감, 또다시 다가올 내일에 대한 약간의 지겨움과 설렘. 너무 힘들만하면 찾아오는 주말과 휴일. 인간의 노동 사이클은 어쩌면 이렇게 맞춤형인지 가끔은 놀라곤 한다.
지금 시간은 오후 10시 53분. 나는 여전히 사무실 내 책상 위에 앉아 있다. 새로 바뀐 부서의 사이클이라는 게 참 고정적이어서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매달 이맘때쯤에는 항상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키게 될 것이다. 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이 분야에 몸담은 한 변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에 애증을 느끼는 직장인으로서, 종종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군가 내게 일을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일이야 말로 내게 있어서 Love & Hate라고 대답할 것이다. 늘 스스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데, 정말 담백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일은 내게 아주 여러 감정을 가져다주지만 그래도 Love가 조금 더 크기 때문에 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일을 함으로써 성취감과 보람,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아주 미세한 성장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이 커다란 부분 중에 하나다.
첫 직장을 다니던 신입사원 시절에는 말 그대로 일에 아주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일이 잘되면 기뻤고 잘 풀리지 않으면 답답함과 우울함을 크게 느꼈으며, 그러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신경 쓰고 내 것처럼 일을 대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대접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객이 전도된 꼴이지만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럴 테고, 그렇게 했던 것을 후회 하진 않는다. 여전히 나는 일을 놓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열심히 한다고 말하지만 그냥 성격이 이런 것뿐이다. 딱히 열심히 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내가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끝내겠다는 책임감, 늘 깔끔한 일처리를 추구하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일을 잘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도 스스로의 인정을 얻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일단은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하는 게 더 오래간다는 것, 더불어 온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하되, 도움을 받을 부분은 주저 없이 도움받고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일은 곧 일상이자 삶의 한 부분이라 일을 하면서 많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일에 너무 자아 의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많은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태생이 그런 건지 나는 일에 너무나 많이 기댄다. 일이 많아도 싫지만 없으면 더 싫다. 빨리 퇴근하고 싶어 하면서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그 모순됨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얼마 안 되는 사회생활 동안에도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없었더라면 주저앉고 싶었던 일이 많이 일어났었고, 회사는 끊임없이 나를 시험하는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일에 대한 나의 감정과 태도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일을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늘 힘겨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식으로든지, 결과가 좋든 나쁘든,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을 때의 그 충족감과 보람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것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를 희망하면서. 물론 나는 언제나 그렇듯 많은 일을 할 것이고 보수는 그에 비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물리적인 보수 그 이외의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삶은 일이 아니지만 일은 내 삶의 일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