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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12. 2022

성실함이 증명해주는 것

올해로 육십 대에 접어든 아빠는 무척이나 성실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한 평생을 성실이라는 가치 아래서 매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아빠의 삶의 궤적을 조금이나마 짐작한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까 성실함은 나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사실 나는 끈기 있는 타입은 절대 아니다. 어릴 때 조금만 힘들면 포기해버렸고 싫증도 잘 내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손대고 다리를 걸쳐 놓고 있다가 금세 그만두기 일 쑤였다. 사실 이 성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i.e 취미발굴러.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늘 강조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꼭 하던 말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성실함에 대한 내 사고의 확립을 도와준 말이기도 하다.


"딸. 무엇을 시작하든지 1년은 해야 돼. 네가 무얼 하고 싶던 다 좋은데 한번 시작하면 1년은 해야 할 각오로 시작해야 한단다.”

"일 년? 왜?"

"일 년은 해봐야 알 수 있어. 일 년 동안 하고 싶은 날도 있고 하기 싫은 날도 있겠지. 그걸 모두 겪고도 계속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초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미술 수업이 너무 듣고 싶어서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저 말이 되돌아왔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알겠다고 했다. 일 년이나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모르고. 그 뒤로 고모들의 관심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됐을 때도 똑같은 말이 돌아왔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는 게 아니면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면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1년이라는 명제를 꼭 달았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도 무엇을 시작 하든 1년은 해야 된다는 생각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게 꼭 성실함과 연결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끈기는 갖추게 되었다. 반대로 무언가를 쉽게 시작하는 걸 최근까지 주저하게 됐었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튼 엄마의 이 말은 내게 꽤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회사 생활에서도 자주 엄마의 말을 생각한다.


일 년이란 시간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다. 하지만 아주 다양한 이유로 그 일 년이란 시간도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는 사람도 수 없이 많다. 첫 직장에서는 일 년이란 시간의 효용을 잘 몰랐다. 막연히 첫 직장이니까 그래도 3년 정도는 있어야지 싶었다. 왜 3년이냐고 묻는다면, 주변에서 너도나도 1년은 너무 모자라고 2년은 애매하며 3년 정도는  한 회사에 다녀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력서 상에서 성실함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물론, 그곳에서 일 년이란 시간을 버틴 것이 기뻤지만 내게는 그저 내가 설정한 목표 시간의 삼분의 일정도 왔구나, 라는 감상이 더 컸다. 왜 다들 그토록 어디로 이직하든 일 년만 있으라고 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지금 회사로 이직한 뒤 딱 일 년이 되던 날이었다. 시간은 정말 무섭게 흘러가고 모든 것은 빠르게 벌어지고 잊혀지며 아주 가끔 회자된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그중의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힘은 이토록 크다. 한 달을 버티고 나면 삼 개월, 육 개월 그다음에 1년을 버티면 3년은 버틸 힘이 생긴다는 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지각하는 게 싫어서 지금까지 칠 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해오면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고, 본래 출근 시간보다 이르게 출근해서 내가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쳐나가고 빼곡히 들어찬 업무 목록을 지우며 일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내게 주어진 것은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묻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내 일이니까 하는 것뿐이다. 한국인의 미덕이라는 겸손을 떠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세운 규칙과 행동들을 과대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내겐 내 대답이 정답이다. 다른 것에는 게으름을 부려도 일에는 대부분 성실하게 굴었다. 사람인지라 가끔 늑장을 부리거나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여유를 부렸다.


끈기 있는 태도와 성실함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있어서 제일 엄격한 관리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회사나 상사가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나 만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고 일했다. 나를 제일 괴롭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해 성실한 태도를 가지면 일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회사 내의 보이지 않는 경쟁, 정치, 남들과의 관계는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틀어질 수 있지만 일은 내가 성실하면 언젠간 스스로에게 보답한다. 그게 얼마나 걸리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나의 규칙에 따라 일해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은 어떻게 해서든 표가 나게 마련이다.


성실함이 증명해주는 것은 바로 내가 걸어오고 쌓아 올린 그 간의 흔적이자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끈기 있게 버틴다는 것은 스스로가 이루어낸 것이며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불안함이 가끔 내 등을 떠밀어주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순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불안감을 안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이 불안감을 이겨 낼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은 성실하게 쌓아 올린 그간의 시간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믿음은 나에 대한 존중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기준은 항상 내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것에 대해 성실한 태도를 지닌 사람은 타인의 성취도 함부로 재단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그간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구태어 말하지 않아도 성실함은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보증해준다.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사는 삶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내가 쌓아온 것들로 내가 추구해온 가치가 자연스럽게 증명이 된다면 그건 멋진 일이 된다. 그러니까, 성실한 태도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끈기 있게 해 보고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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