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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11. 2022

거리두기의 마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르겠는 것들이 많아진다. 조금 더 어릴 때에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도 점점 불확실한 것들로 변해간다. 변해간다기보다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알고 있었던 게 맞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불확실의 영역이 확대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많이 고민했던 건 내 미래도, 커리어도, 건강도 아닌 인간관계였다. 관계라는 게 참 어렵다. '나'와 '타인'이 만나서 일으키는 화학작용이나 인연은 너무 미묘해서 아무리 가까워도 도무지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기도 하며 아주 다양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나 늘 기본은 같다. 그건 바로 불확실성이다.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멀고 아득하게 먼 것 같다가도 가까워진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그게 '나'의 영역에서 ‘타인’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오죽 어렵겠나 싶다. 많은 사람이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힘들고, 내 마음만 같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그 관계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관계는 난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게 그런 '내 마음' 조차도 혼란스럽고 모순으로 가득한 경우가 많기에.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가 어렵고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안 쓰려고 해도 내가 어느 정도 애정을 나눠준 상대라면 자연스럽게 안테나가 삐죽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으니 마음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있는 것에 혹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떠나가고 내버려 두면 다시 곁으로 슬금슬금 발을 붙이는 게 관계라는 아주 얄궂은 녀석이다. 필연적으로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한 가지 태도만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적어도 반절은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야 어떻든 간에 내가 일정 이상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으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채우기보다는 비우기 전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숨을 내쉴 때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워낼 기세로 크게 부풀린 숨을 내뱉는다. 예전보다는 비교적 차분히 나의 이런 모습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다. 심호흡을 두 어번하고 나를 다독인 뒤 기다리면, 순간 예민해졌던 신경 줄도 천천히 돌아온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타이밍은 모든 일에서 중요하겠지만 특히나 인력이라는 건 내 자의로 되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 그래서 신경을 아예 안쓸 수는 없지만 의식적으로라도 내려놓으려고 매번 애쓰고 있다.


아침부터 홍콩에 있는 동료가 콜을 하자는 메신저가 왔다. 주로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먼저 콜을 하자고 하는 경우는 드문데 혹시 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라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내용의 요지는 홍콩에 앉아 있는 빅 보스가 나에 대한 피드백을 묻고 있으니 알아두라는 상황 공유였다. 그래서 그의 의도가 뭐냐고 묻자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답과 함께 네가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 알고 싶어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걱정 어린 충고와 함께.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을 따라오고 있기 때문에 본인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줬다는 사실까지 전해 듣고 나니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일순간 이유 모를 열이 확 치솟았다. 회사라는 곳이 언제든 나의 업무 결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지만 내가 도마 위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썩 달갑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금세 차분해졌다. 어차피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 어떤 말이 오가든 알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뿐이다. 일에 파묻히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주겠지라는 순진한 기대를 품은 것도 아니고, 반대로 지레 포기해버린 것도 아니다. 다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뿐이다. 내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영역에 끙끙대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고 내게 돌아오는 것도 크다. 타인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내 길을 가는 게 결국은 관계에도, 스스로에게도 하다 못해 회사 생활에도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두고 마음을 비우자고. 그렇게 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Don’t take it too serious, just take it easy.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너무 심각하거나 무거우면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심해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가볍게 거리를 두거나 비워내는 것이 모든 것의 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관계에서 만큼은 정도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관계도 다 내 뜻대로 붙잡아둘 수는 없다. 늘 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줘서 미련을 남기지 않되, 가끔은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볼 것. 스스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거리두기는 일종의 마법이다.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상처받거나 쉽게 매몰되지 않는다.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모든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라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부드럽고 편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관계가 깊어지고 상대에게 친밀감을 느낄수록 알게 모르게 사이의 거리는 성큼 좁혀지고, 상대에게 기우는 감정의 무게도 늘어난다. 그와 비례해 자연스럽게 부담감도 딸려온다. 깊은 모든 관계가 부담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게는 그렇다. 그리고 그 부담감을 어떻게 덜어내느냐에 따라 관계의 건강함과 지속성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친한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 유달리 쓸쓸하게 느껴지고 한층 더 예민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친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깊어진 관계가 무거워졌기에 한쪽에서는 본능적인 회피가, 또 다른 쪽에서는 반사적인 당기기가 이루어진다. 사람이기에 반응이 온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에서, 문제는 생기는 거 같다.

그래서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물리적이거나 의도적인 거리가 아닌, 자연스러운 거리. 나를 숨기고 상대를 보호하는 한 뼘의 거리는 필수적이다. 일종의 선 같은 것이다. 친구 사이보다 연인 사이에 트러블이 많은 것도 결국은 그 거리를 자유자재로 침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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