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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06. 2022

연봉 협상의 테이블에서 중요한 것

연봉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감히 자신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대략 열 번 정도의 연봉 협상의 기회가 있었다. 첫 직장은 신입 연봉이 정해져 있었고 설사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신입이라 연봉 협상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연봉보다는 어떻게든 취업의 문을 뚫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인턴 월급을 받으며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몸담은 직군은 겉으로는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의 노동력과 그 노동력을 헐값으로 굴리는 사이클 안에서 돌아가는 업계였다. 비용 구조 자체가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고 기계나 AI에 의존할 수 있는 직군도 아니라 노동력을 많이 갈아 써야 했는데 그 노동력 값이 많이 드니 인건비를 대폭 줄여버릴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 처음 인턴 시절이 끝난 뒤 연봉 협상이 아닌 연봉 통지서를 받았다. 그 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삼 년, 사 년이 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봉 협상은 없었고 나의 업무 성과에 따른 연봉 통지서만 받아왔다.


아무리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직급에 비해 과중한 업무를 해도 연봉이 대폭 오르는 일은 없었다. 국내 기업이라 직급별로 대략적인 연봉 테이블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불합리했지만 나 하나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는 없었다. 사 년이나 일했던 업계에 대한 회의감과 회사에 대한 무력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심이 동시에 들자 다른 업계로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둔 뒤 이직을 할 때 처음 제대로 된 연봉 협상이라는 걸 해봤다. 더 올리고 싶었지만 나는 협상의 스킬도, 하다 못해 내가 정확히 얼마를 받고 싶은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바보였다. 첫 직장의 연봉이 너무 작았던 터라 신입사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이직한 곳에서 6개월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정규직 전환 시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대표님과 직접 연봉 협상에 들어갔고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몇 백을 더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여전히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연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봉 협상에 대처하는 기술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금액 자체보다도 미숙한 내 대처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다.


작년에 주 업무가 변경되고 보직이 추가된다는 나름의 이유를 들어서 연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상사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정확한 금액은 프로모션 시즌 무렵 논의하자 싶어서 확실하게 액수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아시아 전체가 연봉 동결이 되어 연봉은 상승되지 않았지만 역시나 나는 스킬이 한참이나 모자랐고 협상의 테이블에서 승리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초, 부서 이동으로 인해서 연봉을 협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나름대로 협상을 위한 준비를 했다.


첫 번째, 내가 원하는 금액을 정했다. 누구나 높은 연봉을 원한다. 여기서 원하는 금액이란 내 직급과 포지션, 하는 업무, 직전 연봉, 내 마음에서 원하는 수준과의 타협 등을 모두 고려한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금액이다. 여러 사람에게 적정 수준의 연봉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내가 원하는 터무니없는 연봉과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을 만한 선에서 적절히 타협해서 산출했다. 연봉 협상은 나와 회사 간의 협상이라면 연봉 협상 전에는 나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 단순히 받고 싶은 이상적의 연봉 금액만 정한 게 아니라, 추후 이루어질 협상도 고려해서 단계별 구간을 정해놨다. 무엇보다 이 밑으로는 절대 협상 불가능이라는 마지노선까지 산출했다.


두 번째, 협상의 테이블에서 쓸 만한 문장과 스킬을 정리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패를 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어리숙하고 무모하게 협상의 테이블로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정해놓지 않았고 무작정, 이럤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겠다는 막연함만 95% 이상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략적인 시나리오 구상을 했다. 먼저 내가 지난 일 년간 보여줬던 퍼포먼스 정리, 그 퍼포먼스로 내가 회사에 기여했던 것,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업무의 중요도와 분량, 그리고 지난해 연봉 동결로 인해 원래 인상이 되었어야 한 금액까지 모조리 정리한 뒤 협상 시 쓸 문장과 구성을 정리했다. 따로 멘토분에게 조언을 구해서 협상 시기에 대한 조언도 받았다. 부서 이동 후 연봉 협상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부서 이동이 확정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 당장 내 감정보다는 협상에서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고려했다.


세 번째,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협상의 테이블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 회사에 앞으로 쭉 다닌다는 사실이다. 연봉 협상의 테이블은 단순히 연봉을 올리기 위한 협상뿐만 아니라 그간의 회사 생활을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상사와 논의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세련되지 못하게 내 모든 감정을 풀어내진 않았지만 적정한 선에서는 솔직하게 상사와 대화했다. 물론 이 부분은 상사가 어떤 타입이냐에 따라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연봉은 내가 보여준 업무 성과, 매출 기여도, 업무의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자연스레 피드백을 주고받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내 생각과 상사의 생각은 아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은 서로의 의견을 좁혀가면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너무 어렵게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만족할 만한 지점을 찾기 위해 상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미팅으로 원하는 걸 얻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그리고 무작정 감정을 배제하는 것만은 답이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 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연봉 협상의 테이블에서는 초보임에 틀림없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번에는 더 강자와 마주하게 돼서 무참히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협상 자체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기에 앞으로 수도 없이 있을 협상의 테이블에서 기가 죽지 않을 자신은 있다.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다면 협상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협상의 스킬을 익히고 경험치가 쌓이면서 고수가 될 수는 있어도 언제나 승리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봉 협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발판 삼아 그 자리 자체에 주눅 들지 않고 내가 준비한 논리를 펼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아무리 준비해도 자신감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나를 믿고 협상의 테이블에 똑바로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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