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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10. 2022

여자라서 돼!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 제일 많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것은 업무량도 아니고 업무에 대한 무지도 아니었으며 회사생활 그 자체도 아니었다. 업무량이야 많아도 사람만 버틸 수 있으면 괜찮았고 업무에 대한 무지는 트레이닝과 열정으로 커버될 수 있었으며 회사생활은 굳이 바꿔 말하자면 정글로 표현할 수 있었지만 나는 예전부터 서바이벌이나 적응력에는 꽤나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제일 이해할 수 없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성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 그로 인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었다.


나는 스물셋, 학부 졸업 전에 일을 시작했다. 신입사원의 패기도 부려보고 잘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으며 쏟아지는 업무로 인해 울고 웃었던 첫 직장에서 나의 포지션은 언제나 '귀여운 막내'였다. 내가 어떤 성격을 지녔고, 어떤 스타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업무 이외에도 내게 기대하는 게 명확했다. 피곤해도 웃어줘야 했고 상대방이 잘못해도 상냥하게 대꾸해줘야 했다. 내가 정말로 기분이 어떻든 간에 무표정으로 있으면 화났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조금만 덜 상냥하게 대하면 적응했더니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남자여도 그랬을까?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초년생 시절. 매 순간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에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들을 수도 없었다.


남자 상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여자'운운하며 떠들곤 했다. '남자만 있으면 칙칙하다.' '여자가 있어줘야 한다.' '어린애들이 있으면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오빠라고 불러봐라.' 실무는 여자가 다 하는데 승진은 큰소리치는 속 빈 강정 같은 남자들이 더 빨리 했다. 열다섯 명이 넘는 임원 중에 여자 임원은 단 하나, 삼십 명이 다되어 가는 팀장들 중에 여자 팀장은 단 둘. 어처구니없는 성별의 비례에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태연히 차별적 발언을 하곤 했다. 그 와중에 실무진의 대부분은 여자라는 게 참 아이러니였다.


‘이번 경력직 채용은 여자보다 남자로 뽑아주세요.’

‘여자보단 남자가 일하기 편해. 여자는 너무 예민하다니까?’

‘여자는 좀 그래. 여자 뽑아놓으면 조금 있다가 결혼한다고 하고 결혼해서 계속 다닐 거 같아도 애 낳으면 끝이야.’

‘여자는 안돼.’


지금까지도 이런 얘기를 듣고 있다. 특히나 채용을 진행할 때 대놓고 남자를 뽑아달라는 이야기는 아주 흔하다. 지금이 2000년대 초반인지 2021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근거를 들어 최선의 반론을 펼쳤지만 내 말은 타당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그저 약자의 변호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라서 안 되는 이유는 백가지가 넘는데 여자라서 된다는 이유는 너무나 미미했다. 일은 여자들이 훨씬 더 꼼꼼하게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채용부터 입사, 승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정상을 향해 가는데 남자들이 가는 길이 잘 만들어진 등산로라면 여자들이 가야 하는 길은 험난한 샛길이었고 아주 좁고도 가파르다. 아주 가끔 쉼터가 제공되지만 그건 정말로 구색 맞추기 식으로 한 번씩 '제공' 받는 것에 불과할 뿐.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점 더 이 현실 자체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 지금은 밀레니엄 시대인데 단순히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난 것을 제외한다면, 여자에게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던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느 겨울, 상사와 단 둘이 늦게까지 야근을 하다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사실 그날은 내 생일이라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터진 일로 인해서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역할은 당연하게도 내가 하게 되면서 약속은 취소해야 했다. 일은 끝이 보이지 않고 그때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잔뜩 화가 나서 메시지는 쌓여 있는 상태라 심적으로 아주 불편한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게 수많은 팀에 수많은 팀장급이 있는데 고작 사원인 내가 그들을 재촉해야 했고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야근을 감행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식사 자리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분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 당시 인사팀 부장은 다소 말이 많은 여자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에 대한 평이 최악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단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여자들이 더 심한 경우가 많아. 우리 회사만 봐도 김 이사, 이 부장…. 참 대단들 하다 싶어.”

“그분들의 행동이 다 맞다는 건 아니지만, 여자가 너무 소수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소수니까 그만큼 행동도 더 눈에 확 띄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는 거 같구나.”


상사와의 짤막한 대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여자로서 일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많은 편견과 악평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분이라 당돌하게 하는 말에도 동의하고 수긍해주셨지만 내가 대꾸한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왜 남자는 그 사람 자체로 평가받는데 여자는 성별로 뭉뚱그려지게 될까? 이런 의문을 정말 아무도 품지 않는다는 게 제일 충격적인 일이다. 혹은 누군가 의문을 품었어도 너무도 거센 사회적 인식 속에 그 의문이 모조리 사그라들었거나 알면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 짐작했다. 이 모든 게 과도기라 더 극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인정하기 싫어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현실은 그 자체로 조명되기 마련이다. 여성으로서 일을 한다는 건 단순히 일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우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실제로 그런 요구를 받는다. 여자는 사랑받으려면 너무 똑똑해서도 안되지만 본인이 맡은 일은 물론 부서의 일, 회사의 일까지 모두 다 똑 부러지게 처리해야 한다. 그런 모순 속에서 우리 모두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여자라서 안된다고 말한다면 나는 여자라서 무조건 된다고 말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내 목소리를 낼 것이다. 여자라서 안 되는 이유가 수백 가지라면 여자라서 되는 이유는 수천 가지다. 그러니까, 여자라서 안된다는 말이 헛소리가 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일하고, 내 자리를 지키고 몇 안 되는 여자 선배들을 지지하고, 후배들을 이끌어주면서 악착같이 버터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본다. 무조건 버티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아주 많은 수가 버티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고, 그 자체로도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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