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Jan 13. 2022

회사에서 살아남기

'Survival of the fittest. It's the law of the jungle.'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보스 베이비'에 나오는 첫 번째 내레이션이다. 한국말로 하면 적자생존의 법칙. 회사 생활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한 마디로 정글이다. 회사에 한번 발을 들이면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버티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고비가 매번 찾아온다. 언뜻 평화롭게 보이는 그 시간들마저 폭풍전야나 태풍의 눈이라고 느낀다면 내가 너무 회사의 생리를 잘 알게 될 만큼 시간이 흘렀나 싶다. 이런 스스로가 가끔은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 태풍의 눈이든 폭풍전야든 그 평화를 잠시라도 즐기면 될 텐데 어쩔 수 없이 조마조마하게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정말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이럴 줄 알았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차례 휩쓸린 그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 뛰어든다. 회사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일만 열심히 해도, 그렇다고 해서 속 빈 강정처럼 열심히 정치만 해서도 안된다. 회사 생활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내 선택이지만 내 선택과 타고난 성향에 따라 그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기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세운 나만의 원칙 두 가지가 있다. 언젠가 회사 생활을 그만두게 될 때까지 꼭 지키고 싶고, 지켜나갈 두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업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해야 할 일,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다른 핑계는 필요 없다. 사람이니까 매일을 같은 몰입력과 같은 열정으로 해내갈 수는 없겠지만 내가 회사에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해서임을 늘 생각한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사내 정치도, 하다 못해 내가 일을 하는 이유도 아닌 내가 맡은 업무 그 자체이다. 어떤 이유로 회사에 들어왔던 회사에 들어온 이상 내 직급과 포지션에 맞는 일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내 노동력을 매개로 회사와 일종의 계약을 맺고 있는 거다. 다른 개인적인 이유는 그 뒤에 일이고 계약 이행을 위해 우선 돼야 할 것은 바로 업무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회사 생활이 일이 많은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커다란 변수이고 힘든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거기서 나를 일부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도 일과 업무이다.


나도 신입사원 때는 회사 내 인간관계에 아주 많은 신경을 썼고 많이 내려놓은 지금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상사와의 관계, 함께 부대끼는 동료들과의 관계, 심지어 얼굴을 보고 대화할 일이 드물어서 오해가 생기기도 쉬운 외국 동료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고객과 계약 업체들과의 관계. 수많은 관계에 둘러싸여 있고 그 관계로 굴러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를 증명하고, 내가 있는 이유는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우선으로 하다 보면 많은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 김지은 님이 쓴 저서 '김지은입니다.'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에게는 일 밖에 없었다. 일에라도 매달려야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일은 나를 괴롭게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나도 몇 번이나 고비가 있었을 때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산더미 같은 일이었다. 일에 파묻히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시름과 잡념들을 일의 무게로써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의 힘을 믿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 들어도 못 들은 척, 못 들어도 알려고 하지 않으며 항상 입을 무겁게 유지한다.


나는 바빠서 남의 말을 할 시간도 없는데 회사에는 생각보다 아주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은 업무 안 하고 말만 하고 다니나 싶게 모든 소문의 근원지인 사람도 분명 있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 한 가지가 있다면 굳이 모든 것을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은 어차피 걸러져 전체 공지가 되고, 필요한 것들은 언젠가 알게 된다. 물론 회사 내에서 나의 평판을 가끔 확인하고 업무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외에 아주 사소한 가십이나 쓸데없는 사생활까지 내가 알아야 할까? 덧붙여서 어설프게 알게 된 회사 기밀은 내게 짐만 될 뿐이다. 첫 직장에서 내가 맡았던 포지션 상 나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고 항상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했다. 아주 친한 회사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들은 내 마음속에 짐으로 남았고 가끔은 서로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과 거리감도 유지해야 했다.


신입 사원 때 과장님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모르는 게 더 좋아.'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비로소 알 것 같다. 알아서 피곤한 것들은 모르는 게 업무와 회사 생활 전반에 더 좋다. 사람이 세명만 모여도 빠지지 않는 게 회사 가십이지만 굳이 그걸 즐기지 않고 멀리 하는 게 좋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끼어들어서 거들거나 소문을 옮기는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다. 입은 무거울수록 좋기 때문에 많은 것을 모르는 게 이럴 때 편리하다. 가십의 달콤함은 한순간일 뿐이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는 굉장히 오래간다. 신뢰를 쌓으려면 사람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보다는 묵직한 게 낫고 중립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너무 회사 험담만 하는 사람은 피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과는 업무 외에는 엮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정말 친한 동료들과의 속풀이까지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사항은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너무 상사와 회사 험담을 했던 건 아닌지,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서 억울함만 키우고 제대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이 아니라 자기 점검이다. 자기 점검은 그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스스로의 현재 상태를 알아야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


정글 같은 회사 생활이지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고, 내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의 정도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정한 원칙을 지키면서 업무를 열심히 한다면 중간 이상은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유연함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나를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걸 지켜주는 게 바로 나의 원칙이다. 오늘도 회사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본다.

이전 09화 성실함이 증명해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