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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an 25. 2022

취미의 재 발견: 취미, 어디까지 해봤니?

결정의 순간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말은 '할까 말까 할 땐 해라'와 최근에 영어를 배우고 있는 선생님에게 들었던 '어차피 여유 있는 때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시작하시는 것도 좋아요. 정 안되시면 들어보시고 이월하셔도 되고요.'였다. 평소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이거나 열정적인 타입은 아닌데, 물론 이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이 넌 열정적인 게 맞다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규칙을 좋아하고 나만의 원칙이 있는 것뿐이다.- 뭐 하나에 꽂히거나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똥이든 된장이든 꼭 찍어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취미 부자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취미에 손을 댔었다. 내가 생각해도 취미의 역사가 유구해서 내 특기는 취미 발굴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나 혹은 필요 광물을 캐는 게 아니라 초반에 몇 가지 돌덩이만 좀 캐다가 초보자의 장벽을 못 넘고 금세 흥미가 식고 나가떨어지는, 그런 용두사미 같은 발굴러.


내가 가장 오랫동안 취미라고 꼽았던 것은 단연코 독서다. 원래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따로 독서노트를 만들거나 필사를 해두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원체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가리지 않고 읽었다. 가끔씩 정말 좋은 문장들은 블로그 비공개 글로 수집해두기도 했다. 십 대 시절에는 소설을, 이십 대 때는 에세이와 시를 유달리 좋아했고 이십 대 중후반부터 인문학 책과 철학책도 읽어보려고 기웃거리는 중인데 쉽지 않다. 분명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문장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는 구절이 많아서 일까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 지지부진한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다. 나 같은 속독러에게는 흥미 위주의 글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독서 혹은 활자를 읽는 건 이제 취미를 넘어서서 일상에 가깝다. 매일 읽는다. 꼭 그게 온전한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어도, 설사 나를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텍스트일지라도.


그다음 오래 하고 꽤 열정적으로 했던 취미는 아이돌 덕질인데 거의 1n년간 했다. 누군가는 외국 아이돌이나 배우를 좋아해서 외국어도 유창해지고 목표로 삼아 공부도 열심히 해서 모의고사 1등도 했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빠지긴 어려워도 식는 건 너무도 쉬운 금사식 타입이라 내 마음을 다해 좋아해 보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 만큼의 덕질은 하지 못했다. 화면 안에 있는 이상형이든 실제로 만나는 사람이든 왜 이렇게 일정 이상 깊이 빠지는 게 어려운 건지. 그냥 이건 내 스타일의 문제인 걸로. 그러다가 항상 똑같이 돌아가는 아이돌 판과 그 덕질의 형태가 지겨워져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더 이상 취미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어느 순간 꽃에 흥미가 생겨서 덜컥 플라워 어레인지먼트도 시작했다. 처음부터 시연 따위는 해주지 않는 너무 쿨하고 자유방임주의적인 선생님을 만나서 마구잡이로 내가 하고 싶은데로 정말 '어레인지먼트'를 하다가 묘한 매력을 발견해서 계속 클래스를 수강했다. 처음 꽃을 접했을 때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 년쯤 지났을 무렵이라 각종 스트레스와 개인적으로 피곤한 일이 많았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꽃 작업을 할 때는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아서 그 고요한 상태가 좋았다. 친구들이 '꽃 재밌어?'라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재밌는 건 모르겠고 생각보다 힘든데 작업할 때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좋아' 왜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지 그 결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 시점이다. 식물을 만지고, 식물을 재료로 형태를 잡아가며 디자인을 한다는 이 활동적 취미가 가져다주는 육체노동 속의 정신적 힐링의 조합이 아주 끝내줬다. 그리고 완성된 꽃다발, 꽃바구니, 화분 등을 주변에 선물하면 반응이 아주 좋아서 그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아직도 실력은 초보 수준이지만 작업물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특유의 성취감이 있어서 지금까지 손에 꼽게 좋아하고 누구나 한 번쯤 해보길 추천하는 취미다.


그리고 요가. 수영과 더불어 내가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다.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건 2018년도 여름이다. 그때 첫 퇴사와 함께 매일 해볼 운동을 찾다가 요가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게 쭉 취미로 이어지고 있다. 꼬박꼬박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은 수련원에 다녔었는데 작년에 목디스크 판정을 받은 뒤로는 다 함께 따라가야 하는 단체 요가 수업은 따라가기가 벅차서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통해 수련한다. 사실 올해 들어서 너무 바빠져서 수련을 계속 쉬다가 이번 달부터 저녁에 15분 매일 요가 영상을 따라 하며 나 홀로 챌린지를 시작했다. 요가를 하고 있으면 명상을 하는 상태랑 비슷해진다.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며 몸을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한 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일순간 서서히 상념이 걷히면서 고요의 상태로 진입하기도 한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복잡한 대로, 마음이 편안할 땐 편안한 대로 그 특유의 무드가 있다. 매일 저녁 15분 간 요가를 하면서 하루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그 무언가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일, 그리고 일상의 번뇌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시간을 갖는다. 코어 근육을 단련하고 혹은 근육을 늘리고, 관절에 스트레치를 주면서 내 몸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다. 뻣뻣하고 유연하지 못한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때마다 요가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이 행위가 삶을 보내는 태도와 닮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뻣뻣한 삶의 근육을 늘리는 일들, 조금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이 일련의 과정들. 매일 요가를 하면서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만큼 삶에 대해서도 배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드로잉. 비교적 최근에 생긴 취미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정말 확 줄어들면서 집에서 할만한 게 없을까 생각하다 찾은 취미다. 어느새 고급 동영상 플레이어로 전락해버린 아이패드도 활용해볼 겸 온라인 클래스에 덜컥 등록해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원래 예체능에 소질이 없어서 실제로 다양한 재료를 써서 그리는 회화 그 자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디지털 드로잉은 달랐다. 나 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너무 쉽고 재밌게 따라 그릴 수 있다. 내가 주로 그리는 것은 인물보다는 푸드 일러스트와 주변 사물이다. 사실 인물 드로잉은 도전해본 적 없고 아직까지는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아마 쭉 이런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하면서 친구들 생일 때 생일 케이크를 그려서 선물하기도 하고 내가 먹은 것들을 간단히 그려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내 일상의 조각들을 그림으로 남겨두는 건, 글로 나를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인 일이다.


사실 취미라고 이름 붙여놨지만 취미라는 이름을 앞세워 거창해질 필요는 없다. 결국은 이 리스트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과 혹은 좋아했던 것의 목록일 뿐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그로 인해 잠시나마 번잡함과 스트레스를 잊고 몰입의 순간을 만들어준다면 그게 무엇이든 취미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취미의 영역은 무한대로 늘어나고 내 삶도 조금은 더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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