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년 전쯤, 무척이나 힘들고 우울했던 초 여름날 친구와 함께 홍대에 있는 인디 공연장에 간 적 있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노래는 잘 알지 못했던 인디밴드의 공연이었는데, 공연은 보고 싶었지만 유명 가수의 콘서트는 시기적으로도 가격적인 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딱 적절한 값의 표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저렴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훨씬 더 비쌌던 다른 공연 표 값과 더불어 무언갈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는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을 가겠다고 해놓고 우습게도 공연하는 밴드를 몰라서 공연 전에 부랴부랴 노래 두세 곡 정도를 듣고 갔다. 알고 보니 꽤 유명한 밴드였는지 공연장은 사람들이 꽤 많았고 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음악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았다. 공연 관람 후에는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테라스에서 술을 마셨다. 친구와 단둘이 마시다가 친구가 부른 사람들로 인해 술자리는 깊어졌고 그 가운데서 그 시기에 잠시 스쳤던 인연도 만날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후덥지근한 여름날 밤처럼 사람들은 어느 순간 다가와서 끈덕지게 내 주변을 맴돌았고. 그리고 그 끈적함은 불쾌함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면 나는 그 불쾌함에 몸서리치면서도 내게 왔던 그 인연들의 흔적을 가만히 더듬어보곤 했다. 여러모로 미련 섞인 행동들의 반복이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 여름에는 무언가 일이 많았다. 연이어 일이 터지는 게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한꺼번에 무언가가 자꾸만 쏟아져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아슬아슬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술은 잘도 들어갔고 친구와는 좋은 추억을 쌓았다며 서로 즐거워했다. 참 이상했다. 나는 너무나 불안했고, 내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여러 문제로 괴롭고 우울했으며 그 어떤 것도 나를 달래주지 못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잠시나마 행복해졌다니. 그때 처음, 직접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불안과 우울은 함께 오는 것이고 동시에 그 감정이 넘실거려도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행복감으로 그 불안과 우울감을 잠시나마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 여름밤이 내게 유달리 커다란 잔상을 남긴 것은 함께 있어서 너무 좋았던 친구와 함께라 그랬던 건지, 그들의 노래가 와 닿아여서였는지 그건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그 공연장에서 들었던 노래는 아직도 가끔 듣는다.
원래 사람의 감정은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있다지만 그 해 여름의 나는 늦봄부터 시작된 불운과 사건들로 거의 밑바닥을 기다시피 했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할 순 없었지만 충분히 절망적이었고 감당하기는 홀로 감당하긴 벅찼었다. 그럼에도, 늘 그랬듯 혼자서 그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이걸 놓으면 곧 죽을 것처럼 굴었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성격 탓이다. 제 눈을 가리면 안 보이는 줄 아는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내 눈만 가리면서 필사적으로 그 감정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숨기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때의 내가 어딘가 이상했다는 것은 나와 친한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것이고, 실제로도 몇 명은 후에 알고 있었노라고 말했었다. 남들은 다 봄을 탄다는데 오 년 전의 나는 봄도 타고 여름은 더 심하게 탔다. 여름은 원래 더위에 약한 내게 딱히 유쾌한 계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쾌하기만 한 계절도 아닌, 다만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사계절 중에 하나였는데 그 해 여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것도 참 이상하다. 괴로웠는데 떠올려도 괴롭다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향수마저 느껴진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하며 미묘한 감상을 말하니까 아주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괴로운 기억보다는 향수감을 느끼는 게 낫지 않아?”
“그런가.”
“어쩌면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뜻일 수도 있지. 완전히 괜찮아졌다기보다는 희미해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그래. 확실히 떠올려서 괴로운 것보다는 오묘한 향수를 느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 향수감이 딱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사람의 기억에는 온도가 있다. 어떤 기억은 떠올리면 열이 오르고, 어떤 기억은 반대로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며, 또 다른 기억은 나를 울리고, 한편으로는 웃음 짓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무지 그 여름날의 온도를 정의할 수 없다. 내게는 한 없이 뭉근하고 미적지근한 온도 감이다. 뭐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 미적지근한 온도는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선명한 기억과는 정반대라 더 그렇다. 그래도, 달리 정의할 수 없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이번 여름은 내게 어떤 의미였나. 문득 생각했다. 습하고 또 습해서 미스트를 잔뜩 맞은 야채 코너의 상추가 된 기분이었던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최근 몇 년 간의 여름과 비교하면 한층 더 여름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여름은 그 해의 여름과 같이 불안정한 느낌이 필수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에, 바꾸어 말한다면 요즘에 이유 모르게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말이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그럴지도 모르고, 괜한 불안감 일 수도 있으며, 한번 겪어본 사람 특유의 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여름은 내게 있어서 더운 계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가끔 이런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나곤 한다.
누군가가 내게 여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그 해 여름이 떠오른다.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던 나날들, 포기하고 싶고 다 놔버리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그 인고의 시간들 속에 이따금씩 찾아오던 단편적인 행복들과 나를 휘감고 놔주지 않던 끈적한 여름의 밤공기. 그리고 그 써머 무드, 그 안에서 어우러지던 인디밴드 보컬의 목소리. 내가 기억하는 나만의 썸머 블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