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친구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친구가 약 5개월 하고도 일주일 만에, 2020년 12월 1일에 친구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 꾸러미를 드디어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카드를 부칠 때 코로나 19로 인해 증가한 화물량 때문에 EMS를 제외한 일반 우편은 항공 우편이 불가하고 선박으로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답변을 들었었다. 그 당시 친구가 사는 스웨덴은 일반 EMS도 아니고 특급 EMS만 가능했던 터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일반 우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편배달은 정말로 삼 개월 이상 걸렸다. 호주에 사는 친구는 3월에 우편을 받았고, 스웨덴으로 보낸 편지는 4월이 되도록 도착의 기미가 없어서 친구와 나는 편지 분실이겠거니 생각했다. 우울해하고 미안해하는 친구에게 다음에는 꼭 물건과 함께 EMS로 보내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오늘, 그러니까, 유럽 시간으로는 5월 7일 분실된 줄만 알았던 친구가 기적처럼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보내고 싶었던 내 마음이 전해진 것 같다며 고마워하는 친구의 메시지를 새벽에 확인하고 나서 나도 덩달아 뭉클해졌다.
친구와는 아주 오래된 인연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생 때부터 늘 우리는 서로가 첫 번째였다. 내가 이사 간 뒤로는 자주 보지 못해서 일 년에 연례행사처럼 만나고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늘 이 친구가 내게는 첫 번째고, 이 친구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친구가 석사를 하러 유럽으로 떠난 뒤에는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인 작년 1월 초에는 무려 육 년 만에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바쁘고 일상을 살아가느라 정신없지만 한 구석에는 늘 이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멀리 있고 시차 때문에 통화 한번 하려면 몇 주 전부터 미리 시간을 맞춰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순간마저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음만 있다면 그 모양이야 어떻든 간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안정적인 관계가 주는 미덕은 여기서 나온다. 안정감 있고 적당한 무게로 늘 같은 마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이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이라면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그 수에 비하면 극히 적거나 극단적인 경우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에게 꼭 두 번은 카드를 쓴다. 시기는 각자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이다. 글씨는 악필이지만 내 마음을 담기에 손편지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텍스트 메시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 마음을 다해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하지 못했던 애정의 표현을 하기도 하고 그간 느껴왔던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편지를 쓰는 마음은 같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 그걸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상대에 대한 애정의 일면을 지면에 글씨의 형태로 풀어놓는다. 그렇게 꾹꾹 눌러쓴 편지에 진심을 담아, 상대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며 편지를 건넨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자주 편지를 쓴다. 연고 없는 해외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쓸쓸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글씨는 해독해야 하는 수준이라며 친구들이 놀리긴 하지만 모두들 편지를 받으면 즐거워한다. 큰 행복보다 아주 소소한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빈도수는 줄었을지 언정 카드 쓰는 걸 멈추지 않는 이유다. 아래는 친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지 못하는 사이 썼던 편지 중 하나의 일부이다.
‘어느새 겨울은 지났고 꽃핀다는 3월의 초입이야. 시간이 참 빠르지? 누군가가 스무 살 이후의 시간은 털 뭉치를 굴리는 것처럼 빨리 간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나 봐. 얼마 전에 이애경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데 이런 구절을 발견했어.
‘그러니 용기를 갖고 어둠 속을 걸어가자.
새벽을 향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을 빛을 향해.’
우리 둘 다 지금 새로운 시작 때문에 고생하고 있잖아. 어떻게든 적응해나가려고 애쓰면서,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을 마냥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도 있고 열심히 하니까 잘 될 거라고 믿어. 종종 나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도 미숙한 이유가 늘 지금의 순간만은 모두에게 처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러니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처음인 거지. 그래서 항상 실수하고, 고군분투하고, 때로는 울고 웃고 하면서 보내게 되는 거겠지.
처음인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처음이니까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도 못하고 그저 우리가 믿는 대로 행동하고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무언가를 해나갈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의 처음을, 이 적응 기간을 너무 힘들게만 생각하지는 말자. 경험 값이 많아지면 새로움도 언젠가는 과거의 경험과 비슷한 경우의 수가 많아져서 조금은 빨리 적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나를 믿듯이 나도 네가 잘할 거라고 믿어. 우리는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지금껏 잘 버텨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야.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만 할 수는 없겠지만 한 구석 기댈 곳이 있으니까 그 안정감을 발판 삼아서 아주 잠깐만 울고 다시 기운 내자. 이 편지를 너에게 언제 부치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랑과 마음을 담아.’ (2021년 초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