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냥 해보자. 요즘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되뇌는 말이 있다면 단연코 이 문장이다. 회사와 일은 참 귀신같아서 내가 야금야금 무언가를 해내고 특정 업무에 익숙해지면 정말 끊임없이 다른 과제를 준다. 보수적인 분야인데도 회사의 특성 때문인지 혹은 상황 때문인지 유달리 업데이트가 많아서 피곤하기 그지없다. 내게 떨어지는 과제들은 내가 이 분야가 처음인 것처럼 온통 낯선 것들 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부서 이동을 하고 새로운 업무를 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연차가 쌓여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고 스스로가 신입사원 같인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뒤 늘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맡아서 했다. 그리고 그 업무들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다른 직무가 추가되고, 또 다른 포지션의 Role를 요구했다. 대게는 군말 없이 가끔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업무의 확장을 받아들였다. 변화가 아니라 확장이다. 생각해보면 내 역할이 두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 맡았던 업무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문어발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할 게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고 자주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허덕이면서 힘들어할지라도 내가 해보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이 문장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줬다. 그리고 요즘 나를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건 그러니까, 그냥 해보자 라는 문장이다. 나는 늘 문장으로 움직이다. 내가 생각하고, 지향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와 문장으로 사람은 행동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알아차리는 것, Mindfulness 가 중요해진다. 스스로에게 나 자신만큼 제일 난해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제일 잘 알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모른다. 이 모순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참 이상하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여야 하는데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그 사실에 조차 맹점이 있다는 게. 타인을 챙기는 것보다 나를 챙기는 게 더 어렵고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를 돌보는 게 쉽지 않다. 단순히 내게 무엇을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삼초 안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 가득이고, 싫어하는 것도 그만큼이나 많은 데다가 나는 호보다는 불에 대한 기준이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 생각을 한다. '나'라는 사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할 때 검색하면 나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와 역사가 나열되어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척이나 편할 텐데. 하지만 나와 관련된 것 언제나 그렇듯 스스로 해야 한다. 즉, 셀프 Self 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의 나는 사실 혼란스럽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업무가 버겁다. 한국 담당자로 있지만 담당자로서, 한 부서를 온전히 다 맡기에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데 어떻게든 일은 끝내야 하니까 무리해서 나를 갈아 넣고 있다. 모자란 능력과 지식, 스킬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 이미 객관적 판단은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내가 보기에 전혀 많은 업무량이 아닌데도 하나하나 무척이나 오래 걸려서 초조하고 부담스럽다. 물론 이렇게 말했더니 내 멘토 중에 한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썸머. 썸머가 하는 업무량은 절대 적지 않아. 오히려 많지. 그걸 지금 썸머가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그 절대적인 양에 익숙해진 데다가 업무의 관성에 눌려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썸머가 지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당연해. 업무를 어떻게든 쳐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니까 스스로에게 조금은 여유를 줘. 잘하고 있어.'
이 말을 듣고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여유는 여전히 저 멀리, 내가 가지지 못할 무언가처럼 보인다. 나도 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와서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게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한몫한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모자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외에도 내게 주어진 일은 외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매달려서 끙끙댄다. 눈앞에 놓인 업무를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다가도 결국은 펼쳐 든다.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리서치를 하고, 방법을 생각해낸다. 가끔은 멘토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과 회사의 불합리에 대해 토로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일상의 팍팍함과 업무의 어려움에 대해 죽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렇지만 도망치진 않는다. 사실 하루 이틀 정도는 회피성으로 도망치기도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울상을 하면서도 과제를 해결해나간다. 신입 사원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도 버티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야. 그 감상이 들면 두려운 감정을 애써 감싸 안으려고 노력하며 먼저 크게 한숨을 두어 번 내쉰다. 그리고는 그러니까,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내 앞에 놓은 과제들을 해치우면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항상 내 걱정보다는 실제가 조금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걱정과 불안함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다 귀찮다고 외치는 내 안의 게으름과 싸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