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하는 곳에서. 여름을 낙낙하게 마무리 할 영화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예요.
안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에 저한테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에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 걸요.
커피 좋아해요?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 심심할 때 틀다보니 올해만 4번을 봤다. 이 영화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차 있다.
여름, 파릇한 남산, 여름에만 피는 능소화. 조용히 얘기하기 좋은 카페, 쨍한 햇볕. 거기다 한예리 목소리.
여름의 것들로 가득하다.
흐드러지는 능소화 아래서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는 한예리. 이 포스터를 너무 사랑해. 프로파간다의 휘갈긴 캘리그래피가 얹혀져 완벽한 포스터가 탄생했다. 결국 소장해버렸다.
김종관 감독의 조심스러운 클로즈업을 좋아한다. <더테이블 The Table>에서도 마찬가지의 클로즈업 화면이 많았다. 빛이 표정위로 살며시 떨어지는, 그래서 눈을 더 반짝이게 하고, 표정을 따뜻하게 만드는 클로즈업.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영화방에서 함께 '최악의 하루'를 본다. 남산 밑에 자리잡은 집과,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만난 예쁜 영화. 우리집에 너무 잘 어울리는 영화다.
남산도 알록달록 색을 입겠지. 여름의 색은 가고 가을의 색이 찾아 올거다. 여름을 보내기 전, <최악의 하루>의 풍경을 다시 담는다. 그 풍경안에서 거짓과 진심 사이를 오가는 한예리의 최선을 보며 킥킥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