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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Sep 08. 2018

<서치> UI디자이너가 본 UI영화.

우리가 사건을,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

내 주변에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더미니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하실 내용이다) 

사라진 딸을 페이스북을 찾다, 구글 서치로 찾다 등.. 마케팅 문구를 매력 없게 썼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정확하게 표현할 말이 없다. 이 신종 장르를 어떻게 내가 기존의 방식으로 표현을 할까? 

예를 들어 컴퓨터 화면만 내내 보고 왔어요, 마우스 커서에 엄청 집중했어요, 라는 후기를 듣고 대체 예측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주인공의 얼굴을 대면하는 건 영화 스크린 속에 스마트폰 스크린이거나, 노트북 스크린이다. 페이스 통화 중인 모습이거나 유튜브에 나오는 주인공 모습 같은.

통화중인 마고와 아빠 데이빗
뉴스에 보도되는 데이빗




영화는 어쨌거나 스릴러 장르라 스토리가 가장 중심이다. 스토리도 좋았지만, UI를 그리는 디자이너로서 그저 경이로웠다. 인터페이스가 이만큼이나 일상이 되었구나, 라는 점에서. 

난 영화에서 유저 인터페이스의 진화를 보았다. 스릴러 영화에서 어두운 배경, 저벅거리는 발걸음이 아닌 마우스 커서와 알림 소리, 프로필 이미지를 보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되다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트북 모니터로만 보인다. 화면 미러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몇 부분을 꼽아보았다. 




1. 추억을 회상하는 방법 

영화가 시작되면, 한 가족의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 마고(Margot)가 태어나고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이런 시간의 흐름을 보통은 필름이 돌아가는 형태로 많이 표현했었다. 왜, 약간 노르스름한 배경색이 깔리고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사진과 영상이 하나하나 지나가는 방법.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걸 표현했었다.


‘서치’에서는 마고의 엄마, 파멜라의 개인 컴퓨터 화면에서 스케줄 알람이 뜬다. 예를 들면 (예시는 나)

1992. 06. 16. Summer가 우리 곁에!
2005. 03. 01. Summer의 중학교 입학식
...

이런 알람이 컴퓨터에 뜨면서 그 날 오후에는 디지털 사진이 업로드되고, 하드에 저장된다.

이제 우리는 작년 이맘때 뭐했더라, 라며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뒤적거리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에 모바일 캘린더와 컴퓨터를 켠다. 저장된 캘린더에서 마우스 휠을 몇 번 슥슥 움직이면 찾을 수 있다. 또는 오래된 폴더에서 사진을 찾거나. 우리의 추억은 그렇게 회상된다.




2. 이게 다 내 친구야?

나도 나름  20살 때부터 현재와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한 밀리네얼세대다. 중, 고등학교는 지금과 달랐다.

사라진 마고를 찾기 위해 아빠는 딸의 페이스북을 뒤적인다. 어젯밤 함께 스터디를 한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찾아다니지만,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한다.


마고랑 같은 반이었고, 스터디도 같이 하긴 하는데.. 음.. 친구까지는 아니었어요.


페이스북 평균 친구가 155명이라고 한다. 말이 좋아서 친구지, 사실 친구는 그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데.


미국에서 페이스북이 시작된 2005년엔 한국에선 싸이월드가 대유행이었다. 그때 만방에 공개되던 내 일촌과 담벼락에 남겨진 댓글이 곧 내 인기 지표였다. 사실 내 친구는 거기서 몇 명뿐인데. 

지금 페이스북은 거기서 더하면 더 하다. 모르는 사람과 친구를 맺어 보여주기 식 네트워킹을 하는 곳 아닌가. 한 번 마주쳐도 페북 친구가 된다. 우리가 친구야..?


그런데 마고가 사라지고 전국적으로 보도가 되던 어느 날, 페이스북 친구들이 마고를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한다. 

#마고를찾아라 해시태그가 전국적으로 유행한다. 아니, 전국보다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같은 채널에서.

마고야 보고 싶어..
마고가 너무 걱정된다.

'친구까진 아닌데'라고 했던 친구들이 진짜 친구 행세를 한다. 나는 비난할 수 없었다.

#JesuisParis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도 파리 테러 당시,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았으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아서 가면을 쓴 적이 있다. 이게 무슨 힙한 문화 마냥. 클릭 몇 번으로 애도가 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얼마 전 이슈였던 제주도의 비자림 삼나무 절단 반대 서명만 해도 그렇다. 어느 선을 넘으면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언제부터 그렇게 자연훼손에 가슴 절절했다고? 평소에 쓰는 화학성분과 쓰레기 양을 줄이고,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지구에게 그렇게 도움될 텐데 말이다. 모두 내 얘기다.




3. 눈빛 연기

가식적인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내 미묘한 감정을 샅샅이 드러내 준 연출이 있다. 바로 머뭇거리는 메시지 타이핑과 옴짝달싹하던 마우스 커서다.

내 진짜 마음은 이거야- 하며 말하면 내가 조금 쑥스러워지겠지? 라며 침을 꿀꺽 삼키는 연기 대신에 메시지가 자꾸 써졌다 지워졌다 한다. 

망설이는 인디케이터...


사람이 도통 나오지 않고, 나온다 해도 클로즈업이 되는 경우가 없으니 눈빛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데이빗과 마고의 흔들리는 동공, 망설임은 마우스 커서가 대신한다.

그 망설이는 커서를 보며 UI디자이너로서 깨달은 점이 있다. '확인하는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는 거. 특히 중요한 결정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주는 UX는 내 망설임의 결과에 만족하게 한다. 기기는 현실세계와 달라서, 결정하는 즉시 결과가 보이기 때문이다.



4. 마지막, 윈도(Window)에서 맥(Mac)으로

아주 아주 별거 없지만, 나는 신기하게 봤던 부분이 있다. 인터페이스 이상으로 하드웨어가 변화했다.

영화 초기엔 윈도우 컴퓨터로 시작한다. 익히 익숙한 윈도우 시작음과 종료음도 들리고. 10억 명이 봤다던 윈도우 배경화면도 너무 친숙하게 그려진다.

10억명이 봤다는 윈도우 배경화면

그러다가 어느 날(아마 마고가 고등학생이 된 후), 폰이며 컴퓨터도 모두 애플(Apple)사의 맥(Mac)과 아이폰으로 변경된다. 아빠 데이빗뿐만 아니라 딸 마고도. 주변인들의 하드웨어도 모두 애플이다.

추측컨데 이유를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어떤 시점부터 미국인들이 아이폰을 익숙하게 쓴 시기가 있을 것 같다. 윈도우에서 맥으로 많이 갈아타던 시기.

다른 하나는 애플의 동기화와 페이스타임 기능 때문이지 않을까. 맥은 기기간에 연결이 너무 잘되어 있어서, 페이스타임이며 메시지 등을 아이폰과 맥을 자연스럽게 오고 가며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인터페이스를 연출에 사용하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하드웨어를 변경시킨 건 아닐까 하는 추측.




장황했다.

브런치 시사회에 당첨되어 가게 된 소중한 기회라 더 신경 써서 리뷰를 하기도 했지만, 영화 자체를 정말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영화를 보고 나선 충격을 크게 두 가지로 받았는데,

첫째로 UI가 영화의 전부를 이루었다는 경이로움에서다. 익숙하디 익숙한 내 일상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너무 익숙해서 감정조차 없다고 믿었던 그런 곳에서 내 미세한 감정을 캐치하는 연출력.

두 번째로 부끄러움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매일 쏟아지는 랜선 친구, 랜던 이슈에 나는 이제 너무나도 무뎌졌다. 적당히 친하게 대할 줄도, 적당히 추모할 줄도 안다. 진심인 지는 상관없다. 그렇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SNS가 소름 끼치면서도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붙잡고 사는 내 모습도 참 안타깝다 느껴졌다.


많이 정리한 것 같지만 이런저런 정리가 안 되는 생각이 더 많다. 이 리뷰 또한 다른 사람이 보는 브런치가 아닌 나만보는 에버노트에 주저리 남겨놓은 글들이 더 내 진심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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