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Bom Dec 11. 2017

공간을 주인공으로, <아파트 생태계> 정재은

도시계획, 재건이라는 거창함 속에서 사소함은 얼마나 챙겨 왔는지.


화면의 주인공으로 공간을 보다


<말하는 건축가>를 본 사람이라면 건축물에 담긴 한 사람의 고민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과 그 사람을 담아낸 영화.

그 사람 자체가 건축으로도 표현될 수도 있구나, 하고 싶은 말을 건축물로 보여주었구나, 라는 생각이 표현을 못 찾고 헤엄치다가 결국 ‘멋지다’라는 밋밋한 한 마디만 떠올랐다.


<말하는 건축가>를 만든 정재은 감독은 건축을 참 사랑하나 보다. 건축과는 인연이 크게 없는 삶을 살았지만 건축을 참 좋아한다 했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화면의 주인공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고
어쩌면 배우들이 그런 부분에서 불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그런 관심들이 점점 구체화되고 많아지면서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건축을 선택한 것 같다.

- CINE21 Interveiw / 2013



공간이 주인공이 된다라.

다큐의 시선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공기 같던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나는 이런 시선이 많은 작은 영화들을 참 좋아한다.




<아파트 생태계>는 아파트가 주인공이다. 아파트가 어떻게, 어떤 의도로, 언제 나타났는지 간략하게 역사를 말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였고,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파트 역사가 아니다.


세운상가


도시를 세웁시다! 서울 이주민들에게 주거지를 마련 합시다!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던 시대, 가파르게 성장한 아파트를 만든 사람, 손정목 선생님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시절 아파트를 지으면서 겪었던 고찰,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모두가 속물이었지, 라며 아쉬움을 잔뜩 내비치는 손정목 선생님.

아파트를 판 돈으로 자식에게 모두 나눠주고 본인은 이젠 아파트에서 혼자 사신다며 외로움을 감추지 못한 선생님.


결국 ‘공공’ 주택인 아파트에서 우린 얼마큼 공공을 생각하는가.
도시는, 아파트는 우리를 얼마큼 반영했고 바꿨는지.
내 마당을 공유하고 내 이동 구역을 공유하는 건 어떤 의미인 지.
도시계획, 재건이라는 거창함 속에서 사소함은 얼마나 챙겨 왔는지.



영화 마지막에 둔촌주공아파트가 나온다. 축구장 넓이의 88배에 달하고 5930세대가 사는 이 거대한 아파트는 곧 사라진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2번째 책.

거기서 그 마지막을 담고자 하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시리즈 책을 낸 이인규 작가가 나온다. 최근 11월 24일에는 세 번째 책 펀딩을 시작했다. 주제는

사람이 모두 떠나면 고양이는 어떡하죠?


아파트를 나와 내 이웃, 그리고 자전거와 자동차. 이런 것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있었지만 그 속에 살고 있던 또 다른 존재를 영화를 통해 처음 보게 되었다.

너무 안락하게, 때깔 좋게 살고 있던 아파트의 고양이들. 내가 원하지 않았던, 몰랐던, 어쨌든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내가 살던 고향은. 공간은.

재건축 아파트가 많이 등장한다. 아파트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지.

아파트는 결국 이렇게 끝난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명분 아래서.

건축물은 새로 지어지겠지만 그 안에서 내가 살았던 공간은 사라지는 거다.


출처: [허프 인터뷰] 주공아파트가 고향인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강동 둔촌주공아파트


내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파트도 사라졌다. “OO야, 놀이터 가자!”라고 말하면 허겁지겁 운동화를 신으며 뛰쳐나오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이사를 갔다.

내 고향, 내 어린 시절. 이제 그 시절과 함께 떠오르던 추억은 많지만 공간이 사라졌다.


처음 네 발 자전거를 떼던 순간, 엄마와 함께 동생 유모차를 몰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 웃던 이웃 아주머니들, 단지 주차장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인형놀이를 하던 친구들. 이젠 기억에서도 아득-한 아파트를 다시 끄집어 내니 울컥했었다.


이 이야기 외에도 목동에서 재건축으로 투쟁하던 주민들이 함께 목화마을을 꾸린 이야기, 아시안 선수촌 아파트를 지으며 주거란 무엇일까, 고민했던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도시에 대한 관심,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
이런 생각들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 CINE21 Interveiw / 2013


정재은 감독의 바람이 다 담긴 영화. 개인적으론 <말하는 건축가>보다 더 짜임새 있던 영화였다.




마지막에 나오는 OST 너무 좋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끝까지 버리지 못한 허영 <블루 재스민> 우디 앨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