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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Nov 26. 2017

끝까지 버리지 못한 허영 <블루 재스민> 우디 앨런

'난 모든 사랑의 순간 앞에서 진실했던가'.

우디 앨런은 두터운 국내 팬심을 가진 감독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구설수가 더 많은 듯 하지만..). 가장 사랑받은 작품은 뭐니 해도 <미드나잇 인 파리>.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특징은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면서 빠져드는 사랑필터가 잔뜩 낀 영상, 그 장소만의 로망을 가득 담은 배경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한 밤의 파리였고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로마, <카페 소사이어티>에서는 1930년대 할리우드다.

우디 앨런은 인물을 장소 속으로 잘 대입시켜 성격과 스토리를 이어가는 재주가 있는데, <블루 재스민>은 유독 장소가 강조되지 않았다. 개인이 드러내는 말투, 표정, 제스쳐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의 특징은 재즈다. 우디 앨런은 절대 재즈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거라 힘주어 말했다. 그 장소에 취해버리는 농도 짙은 재즈 음악이 좋다.


영상의 뿌연 필터는 확실함이 없는 스토리, 재스민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모든 게 ‘아이러니’ 상태다.

뉴욕 상위 1%의 삶을 살던 재스민은 남편의 사기와 바람으로 모든 걸 잃는다. 애초에 자기 인생 없이 남편 인생 속에 들어가 살았던 재스민이기에 남편이 떠나자 모든 걸 잃은 것이다.



내가 지금 고른 사람이 최선이야

영화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다.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재스민의 눈빛과 손가락이 긴장되는 분위기를 계속 연출한다.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엔 그녀가 싫어하는 동생이 산다. 그녀와 상반되는 삶을 사는 '진저’의 인생으로 다시 자신을 내던진다.

진저가 고르는 남자들은 영 시원찮다.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전 남편, 욱하는 성질의 로맨티시스트 남자 친구, 그저 하룻밤을 위해 사랑을 가장하는 한 남자. 그게 진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전부이면서 재스민이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눈을 높여 가진 게 많은 남자를 만나 떵떵거리며 살아보라며 잔소리를 한다. 행복해지라고.

진저가 대답한다.

난 언니만큼 예쁘지 않다고, 내가 지금 고른 사람이 최선이야, 적어도 언니보다는 행복해.


샌프란시스코의 삶에 질려가던 재스민은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멋진 옷과 단정한 매너, 그리고 포부를 말하는 당찬 모습에 그녀는 이제 자신과 수준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보여주는 오션 뷰가 한눈에 보이는 집에서 재스민은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그래, 내 미래는 이런 거지. 내겐 이런 생활에 어울려.

그마저 결국 서로를 속이고 속이다 끝나버렸지만.




끝까지 냉소적인 우디 앨런

모든 걸 가졌다고 믿었던 재스민의 추락, 그럼에도 버리지 못한 허영, 진실 없이 시작되는 사랑, 나는 그 속에서 그녀가 정말 행복해지고 싶게 맞는 걸까, 의심만 짙어졌다.


영화에서만이라도 행복한 결말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난 차마 결말짓지 못한 채 끝내는 영화가 좋다. 오히려 여기서 끝-이라 말하는 영화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달까. 그들의 인생은 영화에서만 보이는 이야기가 다가 아닐 텐데, 끝내버리면 어쩌나, 라는 생각에 상상과 의심의 여지를 주는 결말을 선호한다.

이 영화는 내게 잔인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디 앨런은 마지막까지 재스민을 상처받게 하고 내쳤다. 과거를, 의미없는 허상을 극복하지 못한 주인공으로 남겨둔 것이 가장 좋았다.

재스민이 살아온 인생도 괜찮았는 지, 이제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지 상상하는 건 내 몫이다. 그녀의 인생에 나를 대입해볼 차례다.




누구나 조금씩 연기하며 사는 중이지.

이 멋진 연기를 독백으로 해낸 케이트 블란쳇

특별할 것 없는 인생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한 주인공이 있다. 처음부터 재스맨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이 준 허상을 자기라고 믿고 살았다. 그 믿음이 무너지고 허울이 벗겨졌을 때, 발끝까지 두려움에 떨던 재스민.


주변이 화려할 땐 스스로를 묻어두기 쉽다. 치장 속에서 치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파티는 끝났고 불이 꺼졌다. 어두침침한 방에 남겨졌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 가식과 허영을 보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이, 내 마음에는 들까? 그 모습을 누가 사랑해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난 재스민을 욕하며 볼 수 없었다. 누구나 조금씩 연기하며 사는 중이지. 교양 없어 보인다며 교만하게 판단하거나 가치가 없다며 무시했던 모습. 재스민과 난 정도의 차이일 뿐, 같은 모습을 가졌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사랑할 때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건 내 안의 무의미한 허영. 감정의 가장 끝에서야 묻게 되는 말은, 결국 '난 모든 사랑의 순간 앞에서 진실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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