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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Jan 02. 2019

금기를 노래해, 담아두기만은 아까워. <레토>

아트나인에서 <레토>를 사전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선택하는 내 기준은 ‘포스터’와 ‘추천인’, ‘감독'이다. 영화 티저나 예고편은 거의 보지 않는다. 배우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보통 이 영화 보고 싶다, 처음 느끼는 건 포스터 디자인과 제목, 슬로건만 보고 바로 Pick. 내용과 배우는 가서 보면서 확인한다.


레토를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포스터 디자인. 콘트라스트 높은 흑백과 굵고 강하게 쓰인 폰트, 원색의 대비까지. 내가 사랑하는 그래픽 요소를 모두 가졌었다. 그 외에 하나 더, ‘러시아’라는 키워드에 마음이 끌렸다.

난 예전 시대 러시아에 멋 모를 낭만이 있다. 러시아 문학에서 표현되는 끓어오르는 열기, 정신병을 나게 하는 도시의 숨결과 분위기 같은 것.


어쨌거나 영화가 어떻든 간에 포스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놓았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러시아. 여름. 혁명. 보라색. 볼드. 바다.


잘생긴 빅토르 최...아니 배우 유태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명곡 퍼레이드에 스토리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충분히 느낄 감정이 풍성했다.

사실 나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음악이었는데, 내 세계를 넓혀주는 예술은 다 꿀꺽꿀꺽 삼켜도 체하는 경우는 없었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 밴드,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전성기를 맞이해 대중을 홀리고 뮤지션에게 귀감이 되는 일대기보다는, 그가 처음 시작하는 음악, 젊음, 분출에 대한 꽤나 부드러운 이야기.


1981년 레닌그라드의 여름을 배경으로 나지막한 해변과 타오르는 장작 위에서 시작된다.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다. 영화 초반 깔리는 ‘레토’라는 노래는 여름날, 젊은 낭만을 노래한다.


음악은 흐르기보단, 비중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리듬도 타지 못하는 엄숙한 공연장을 깨부수는 장면에 강렬한 헤비메탈 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상황을 바꾼다.

그럴 때마다 영화는 갑자기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되는데, 거기서 나는 금기의 시대에서 해방되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아, 저 시대에 이런 짜릿함때문에 음악을 했던 거구나!

극 중에서 마이크와 빅토르가 주고받는 대화들이 조용한 반란군처럼 날 일깨우기도 했다.


머릿속에만 담아두기엔 우리 곡들이 아까워
이것도 노래로 써볼까?



억압과 경직의 흑백 영화였지만, 카메라의 춤사위는 현란했다. 그들은 재가 되어도 좋다며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장작 같았다. 그 청춘들은 이만큼 태워도 더 태울 게 남았을 거라며, 불길로 마구 뛰어들어가는 거다.

조금 뻔해 보이는 '청춘', '젊음', '음악'의 조합인데 이런 식의 표현은 처음이었다. 뻔해 보이는 주제를 품격 있게 다뤄준 <레토>.


p.s. 영화사가 엣나인 필름인데, 인스타그램에 가면 레토의 다양한 그래픽 포스터와 행사 소식이 많다. 보는 재미가 쏠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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