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을 떠난 그녀 대신 남겨진 사람. 혼자.
홍상수 영화는 이상하다. 2시간동안 영화를 보고 있을 땐 의식의 흐름대로 프레임을 따라가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머리가 복잡해진다. 분명 그 전엔 졸다가, 웃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캐릭터, 행동들,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게 담아내는 게 그의 능력이 아닐까.
영희(김민희)도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캐릭터다. 차분히 툭툭 내밷는 말투가 참 특이하다. 반응은 꼭 반 박자가 늦고 질문은 너무 뜬금없다. 영희는 배우다. 영화감독과 바람피다가 세간의 시선이 너무 힘들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서 모든 걸 잊고자 한다. 벌써 감이 온다. 같이 보던 관객들이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그냥 자기들 얘기 아냐?’.
홍상수 감독은 절대 자전적인 내용이 아니라며 부인했지만. 나도 그 인터뷰를 보고 간 뒤라 영화로써만 대하려고 애썼는데, 잘 안되더라. 내용과 인물이 너무 자신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내고 있는 것같았다.
'영희 얼마나 불쌍하냐. 자기들이 좋다는데 지들이 왜 난리냐'고 말하던 주변 사람 1.
‘다들 가짜 사랑이잖아. 모르면 그 입 다물라구요’
'다 자격 없어요. 다 비겁하고 추한 짓 하면서.’ 라고 술취해 소리치는 영희.
‘후회하지. 엄청 후회해. 그런데 너무 달콤해’ 영희와 대면한 영화감독의 말.
영화속 모두가 그들을 대변하고 응원한다. 한마디 한마디 자신들을 대변하려고, 포장하려고, 소리치려고 만든 영화같았다. 정말 누구말대로 이쯤 되면 그들이 맞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너네들이 틀렸다고. 그럴 자격없는 내가 도덕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서 판단했던 건 아닐까, 자기 반성까지 하게 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해변에서 떠도는 영희(김민희)의 모습이다. 영희가 해변의 수평선을 따라 옆으로 누워있는 뒷모습. 영희의 처절한 고독을 느껴보라고 만든 영화라면, 난 그 장면에서 그녀의 뒷 모습에 한 켠이 아려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참 쓸쓸하구나, 외로웠구나’, 와닿았다.
영화의 마지막, 영희는 한 낮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러나 쓸쓸히 해변을 떠난다.
곧 해변엔 밤이 찾아오겠지. 이제 제목처럼 밤의 해변에 남겨진 ‘혼자’는 누굴까. 영화를 보던 나일까, 아니면 그녀를 사랑해서 후회하고 있는 그 자신일까. 그녀의 외로움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홀로 남겨진 쓸쓸함을 감당하겠다는 의지일까.
영희의 처절한 고독한 마음에서 시작했다가, 남겨진 이의 쓸쓸함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끝까지 외롭고 처량하다.
전작 <당신과 당신자신의 것>은 무척 달콤했는데.. 그도 나이가 드나보다. 이만큼의 깊이를 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