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프지만 난 연애가 하고 싶다

by 썸머G

“오늘은 당신이 바람맞는 날인가 봐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엄마 암이 전이됐데요.”

“괜찮아요? 우리 약속은 아무래도 좋으니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서 어머니 옆에 있어요.”

몇 날 며칠을 기다린 약속이었다. 많이 좋아했다. 그는 늘 바빴고 좀처럼 내게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전 약속도 그에게 일이 생겨 보지 못했다. 오늘 어렵게 다시 약속을 잡았는데 하필이면 오늘 엄마의 암이 재발되었다.


엄마는 1년 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췌장암은 조기에 발견하기 어려운 암이다. 발견했을 때는 대부분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드물고 예후도 나빠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 중의 하나다. 수술이 최선의 치료책이지만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20% 미만으로 낮다. 엄마는 그 20% 안에 들었다. 그 20%라는 숫자는 엄마에게 당신은 살 수 있고 반드시 살 거라는 종교와 같은 믿음을 주었다. 보이는 암 덩어리는 다 제거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6개월 동안 총 17번의 주사를 맞고 나자 교수는 엄마에게 휴가를 주었다. 잠시 쉬면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살 좀 찌워 오라 했는데 단비 같은 3개월의 휴가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암은 기어이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엄마는 수술을 받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요양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 남이 불편해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엄마는 내가 보호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밥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줄 수 있는 요양 병원에 짐을 풀었다. 요양 병원과 대학 병원에 오가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만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항암을 하러 대학 병원에 갈 때면 스스로 가방을 싸고, 메고,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하고, 피를 뽑고, 교수를 만나고, 항암 주사를 맞고, 퇴원 수속을 밟고, 가방을 싸고, 메고, 돌아왔다. 항암은 지독했다. 손발은 저리고 시렸다. 구토와 헛구역질은 일상이었다. 음식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삼켜야만 하는 게 되어 버렸다. 머리카락은 빠졌다. 살면서 여태 알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신체 반응을 매일 다르게 마주해야 했다. 엄마의 매일에 나는, 보호자는 없었다.


나는 딸 노릇만 했다. 엄마가 오면 같이 시장을 보고,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고, 치우고, 산책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엔 외식을 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엄마를 요양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요양 병원은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는 20분, 느린 걸음으로는 30분 거리에 있었던지라 우리는 병원까지 걸어갔다. 엄마는 걸을 수 있는 한 어떻게든 걸어야 한다며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았다. 30분 거리가 40분이 되고 50분이 되어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에겐 딸에게 기대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내겐 아픈 엄마를 두고 내 일상을 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내 시간을 가지고 싶기도 하고 집에서 꼼짝하기 싫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귀신같이 내 기분을 알아차렸다. 엄마는 마치 자기가 혼자 가고 싶은 마냥 한껏 톤을 끌어올려 “나, 오늘은 혼자 갈래.”라고 말하고는 일어나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며 “아줌마, 잘 놀다 가요. 담 주에 또 올게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어정쩡하게 구는 나를 현관문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돌아갔다. 엄마와 함께 있는 날은 일주일에 고작 이틀이었다. 병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고작 왕복 1시간이었다.


퇴근을 하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내일 보면 되는데 뭐 하러 왔냐며 별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를 대했다. “괜찮아, 다시 치료받으면 돼.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꼭 나을 거야.”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고, 엄마를 껴안지도 않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서는 점심에 뭘 먹었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고 있는데 톡이 울렸다.

“병원에 갔어요? 늦게라도 잠깐 볼래요? 집 앞으로 갈까요? 아니다, 오늘 같은 날은 마음도 어지러운데, 내가 괜한 소리 했다. 집에 가서 쉬는 게 낫겠다.”

“아니요. 보고 싶어요.”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그저 들어가라고 성화다. 뭉그적거리는 내게 엄마는 자신이 너무 피곤하다는 무기를 들이댔다. 나는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일어나고는 집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소녀, 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자요. 많이 사랑해요. 낼 봐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보다 더 공허한, 허공에 울려 퍼지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죄책감을 밀어내고 그가 오겠다는 집 앞 편의점으로 뛰어나갔다. 엄마는 아프지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헤어지려 하는데 그가 나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예상치 못해서 따뜻한 품이었다. 엄마가 아파서 받을 수 있었던 품이었다. 엄마는 아프지만, 구질구질한 이 연애가 그래도 나는 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