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였던 엄마는 드문드문 찾아옵니다. 길을 가다가도 주저앉아 서럽게 울던 나는 누가 볼세라 눈물을 슬며시 훔쳐냅니다. 살아야 하는 나는 용서할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합니다. 사무치고 누르고 쏟아내고. 그렇게 무뎌 갑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선택한 길을 걷는다. 떠밀리는 선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삶을 산다. 나 자신으로만 살아갈 수 없기에 쉽지 않습니다. 누구의 손녀,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누구의 동생,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 내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역할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제쳐두지 않고 현명하게 같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의사 결정에 나만 생각하면 되는 가뿐한 인생이 주어졌습니다. 살면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학교 갈 때 같이 갔고, 남들 졸업할 때 졸업했고, 남들 취직할 때 취직했습니다. 지각은 한 번도 하지 않고 17년 동안 출근하고 퇴근했습니다. 이제서야 묻습니다. 넌 좋아하는 게 뭐니? 넌 어떻게 살고 싶니?
좋아하는 것은, 취향은 그냥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더군요.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고 접해봐야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나를 궁금해하고, 내가 내게 묻습니다. 가지고 싶은 삶의 태도를 적어봅니다. 중히 여기는 가치를 적어봅니다.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납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합니다. 벌써 켜져 있는 불빛이 있습니다. 지금 막 꺼지는 불빛도 있습니다. 잠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시고 커피를 내립니다. 노트북을 켜고 일기를 씁니다. 어제의 하루를 되돌아봅니다. 사그라진 감정, 아직 남아있는 감정을 느리게 마주해 봅니다. 밥을 합니다. 밥 한 끼를 먹는데 들어가는 수고를 밥을 해 먹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먹은 것은 바로 치웁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책을 읽습니다. 글을 씁니다.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장을 봅니다. 청소를 합니다. 빨래를 합니다. 분리수거를 합니다. 놀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갑니다.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외식도 하고, 혼자 술도 마시고, 혼자 여행도 갑니다. 음악을 듣다 울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해가 지기 전 밖으로 나가서 빠른 걸음으로 숨이 차게 5km를 걷습니다. 어떤 날은 10km를 걷습니다. 땅에 두 발을 딛습니다. 한 발이 나아갈 때, 다른 한 발은 지지합니다. 걷다 보면 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뜁니다.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요가를 갑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자세를 누군가는 합니다. 누군가가 못하는 자세를 저는 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천천히 내 호흡으로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씻고 눕습니다. 오늘을 내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잠을 청합니다.
‘걷고, 요가하고, 여행하고, 읽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그 글이 영향력이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이 한 문장을 쓰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가보려 합니다. 천천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