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건 별수 없다

by 썸머G

엄마랑 아빠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랐다. 엄마는 절대 미인이었고, 아빠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철저한 계획형에 계획한 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고, 아빠는 대책 없이 저지르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세심했고, 아빠는 무심했다. 엄마는 건강에 해로운 것은 하지 않았고, 아빠는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멈추지 못했다. 엄마는 집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었고, 아빠는 집 밖에서 행복한 사람이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이 같은 건 딱 하나였다. 씀씀이. 마음이 컸고, 대포가 컸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아빠는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고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췌장암 2기 진단을 받고 치열하게 투병하다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전화선 너머로 엄마가 아빠가 암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장기 출장 중이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잠깐 들어왔다 가야겠다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을 얘기하면서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떨렸다. 매장 오픈이 코 앞이라 바로는 못 가고 오픈하고 가겠다고 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겨우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이었는데 아빠는 몰라보게 살이 빠져 있었다. 얼굴은 움푹 파여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팔과 다리는 힘없이 흐늘거렸다. 몸을 겨우 일으켜 잠긴 목소리로 왔냐며 애써 웃어 보이는 아빠를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내 눈물을 훔쳐내고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4박 5일, 짧지만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싱가포르로 갔다. 아빠는 항암치료가 무서웠다. 아빠는 자신이 힘든 것은 못 참아했다. 그런 아빠는 조금 더 살겠다고 기나긴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느니 짧게 고통스럽고 죽는 것을 택했다. 3개월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겨울,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밥을 먹고 치우고 앉았는데 엄마가 암인 것 같다고 했다. 정밀 검사를 해 봐야 더 정확히 알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남 얘기하듯 더없이 담담하게 말을 꺼냈던 엄마는 끝내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꼭 껴안아 주지도 않고, 부둥켜안고 같이 울어주지도 않고, 괜찮을 거라고 달래지도 않고, 물었다. “그래서 검사가 언제야?” 울고 싶지 않았다.


엄마 인생에 포기란 없었다. 엄마는 수술을 받고 집이 아닌 암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병원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한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장보고 요리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했던 엄마는 아무리 비위 좋은 사람도 며칠이면 물리는 병원 밥을 4년이나 군소리 없이 열심히 먹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와 연신 구토를 하면서도 먹으면 살고, 못 먹으면 죽는다며 먹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평생을 신조대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밥 한 숟가락을 겨우 입 안에 밀어 넣고는 넘기지 못한다. 다음 수저는 뜨지 못하고 밥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그 와중에 내 배는 고프고 나는 밥공기를 비운다. 엄마는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편하지 않고 밤새 뜬눈으로 뒤척인다. 그 와중에 나는 잠이 쏟아져 잔다. 그런 내가 밉다가, 아픈 엄마가 미웠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빌었다. 지금 눈 감는다 해도 세상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살아서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죽을 용기는 없으면서 빌기만 빌었다. 제발 날 좀 데려가 주세요. 어떻게 해서도 생각이 떨쳐지지 않을 때면 엄마한테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엄마는 그렇게 아픈데, 살고 싶어?’


엄마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살아야지 별수 있냐는 듯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났고, 일어났으니 움직였고, 밤이 되면 누웠다. 일탈은 없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했다. 그저 자신이 백발 하얀 할머니가 되어보지 못한 게 아쉽고 자신이 지금 보다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됐을 때 모습이 궁금하다 했다.


오늘 하루도 무수히 흔들렸다.


봄이 왔다. 봄비가 내리고 개인 아침 창밖, 연둣빛 초록이 물기를 머금고, 산들산들 바람과 함께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좋다는 말이 나왔다. 나쁜 년. 누가 누구의 인생을 감히 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고, 살고 싶다가도 죽고 싶은 게 인생이다. 눈이 떠졌으니, 죽지 않았으니 오늘도 산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시고,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할 일을 하고, 씻고 잔다. 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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