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by 썸머G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겨울 영화 한 편을 봤다. 드라이브 마이 카.


“엄마는 췌장암으로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암에 걸리고 4년을 못 살고 3년 8개월 만에 가셨어요. 엄마는 강인하고,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어요.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엄마는 다정했지만 엄하기도 했어요. 단호했죠.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했고, 해야 할 건 해야 했어요. 학교는 빠지면 안 되고, 학생은 공부해야 하고, 집에 들어와야 할 시간에는 들어와야 했어요. 나는 엄마랑 닮은 구석이 없었어요. 생긴 것부터 성격까지. 동생도 나랑 달랐어요. 동생은 공부를 아주 잘했어요. 제가 월등히 못하는 것도 아닌데 월등히 잘했어요. 엄마는 비교해서 뭐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주위에서는 늘 뭐라고 했죠. 아주 지겹게 들었어요. 엄마가 예뻐서 좋겠다, 동생이 공부 잘해서 좋겠다. 전 진짜 좋았어요. 엄마가 예쁘고, 동생이 똑똑하고 공부 잘해서요. 태생이 남 시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열등감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나이는 여무는 나이가 아니니까. 순간순간은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 잘하는 동생 말고 제가 유학을 갔어요. 동생도 무척 가고 싶어 했죠. 그런데 엄마는 저를 보내줬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첫 학기를 마치고 돌아와야 했죠. 한 학기를 쉬고 다시 돌아갔어요. 그리고는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졸업을 하고 저는 회사에 들어갔고 엄마는 가게를 열었어요. 생활전선에 뛰어든 엄마가 낯설었어요. 아니, 보기 싫었어요. 엄마처럼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태도 전환을 빨리하는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 거예요.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외면했죠. 엄마가 가게를 하는 10여 년 동안 전 가게에 나가 엄마를 도와준 적이 없어요. 엄마는 일손이 없어도 저를 부르지 않았어요. 엄마는 1년에 딱 3일 쉬었어요. 신정, 구정, 추석. 그렇게 10여 년을 우린 일만 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기어이 일으켜 세웠어요. 부촌의 고급 빌라에서 어느 동네의 좁은 골목 다세대 빌라로 주저앉았다가 강남에 새 아파트를 샀죠. 그리고 입주를 앞두고 엄마는 암에 걸렸어요.”


“엄마는 뭐든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해야 하는 거면 불평불만 없이 했어요. 살면서 밥 하기 귀찮다는 푸념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어요. 가게를 하는 동안 힘들다는 소리 한 번 안 했어요. 70여 차례 항암을 하면서 아프다 그만하고 싶단 얘기도 안 했어요. 안 하면 안 했지 하면서 절대 징징거리는 법이 없었어요. 영양제로만 한 달을 버티다 수액을 빼겠다고 말하고 엄마는 5일 만에 눈을 감았어요. 병원에서 힘들 것 같으니 엄마를 보러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불과 3시간 전에 엄마랑 통화를 했던 나는 믿을 수 없었어요. 회사에 말하고 조퇴하려 준비하는데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된 직원들이 걱정해 줬어요. 전 고마우면서도 불편했어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이 상황이 반복되면 어쩌지였어요….” -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되면 어때요. 엄마가 살면 되죠. 그런 거잖아요.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엄마의 모습은 처참했어요. 엄마는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병실에 입원해 있었어요. 병원에선 제게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다인실 병실로 옮기라고 했어요. 전 1인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했어요. 그리고 엄마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병원에 가려 하는 데 전화가 왔어요. 1인실이 나와서 준비되는 대로 연락할 테니 기다리라고. 짐을 싸고 대기하고 있는데 저녁이 돼서야 연락이 왔어요. 혈압이 떨어지고 있으니 지금 오라고. 엄마는 그날 밤 처치실에서 돌아가셨어요. 당장에라도 하루라도 더 엄마 곁에 있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 ‘난 엄마를 버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가 무섭다고, 내가 힘들다고.’


“너무 힘들면 가도 돼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엄마의 심장은 멈췄어요. 엄마를 붙잡지 않았어요. 엄마를 부르지도 않고 그저 엄마를 쓰다듬었어요. 엄마가 죽었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가, 간호사가 보였어요. 엄마가 죽었는데 나는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때 엄마의 손이 따뜻했는지, 차가웠는지, 부드러웠는지, 굳었는지. 뭐가 그리 급해서 온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굳기도 전에 난 엄마 손을 놓았을까요….” - ‘땅바닥에 주저앉아 엄마를 목놓아 불렀어야죠. 가지 말라고, 못 보낸다고 울며 붙잡아야 하는 거잖아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있어도 누구나 기다려줄 만한 상황이잖아요.’


(가후쿠) “오토가 죽던 날, 나가는데 그녀가 집에서 얘기를 하자고 했어.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결의가 느껴졌어. 용무는 없었지만 계속 차로 돌아다녔어. 돌아갈 수 없었지. 돌아가면 예전의 우리로 못 돌아갈 것 같아서. 늦은 밤 돌아가니 오토가 쓰러져 있었어. 구급차를 불렀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어. 좀 일찍 돌아갔으면 좋았을걸. 그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어.”


(미사키) “엄마를 죽였어요. 집에 산사태가 덮쳤을 때 저도 안에 있었어요. 저 혼자만 무너진 집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어요. 기어 나와 잠시 반파된 집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고 있자니 다음 토사가 밀려와 집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엄마는 토사 속에서 사체로 발견됐어요. 전 엄마가 안에 있단 걸 알고 있었어요. 왜 구조를 요청 안 했는지, 구하러 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를 미워했지만 밉기만 한 건 아니기에…. 뺨에 난 상처는 그때 사고로 생긴 겁니다. 수술하면 눈에 덜 띈다더군요. 하지만 없앨 마음은 없습니다.”


(가후쿠) “내가 만약 당신 아버지였다면 어깨를 안고 말해주고 싶어. ‘네 탓이 아니야’ ‘넌 잘못한 게 없어’라고. 하지만 말 못 하겠어. 넌 엄마를 죽이고 난 아내를 죽였어.”


엄마가 암이라고 말한 날, 엄마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어땠냐 많이 아팠냐 물어봐야 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엄마 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가지 말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엄마 손을 꽉 잡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 가후쿠가 내게 말합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는 위로 보다 이 말 한마디가 저를 숨 쉬게 해 주었습니다. 엄마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제가 저지른 모든 잘못은 되돌리지 못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괴로움을 안고 제가 밉더라도 용서가 안 되더라도 살아가야 합니다.


가후쿠가 말합니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나와 너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괜찮아.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대사 포함,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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