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정말 어렵더라고요.

돌나물 참치 비빔밥

by 자몽씨

남들처럼 마음만 먹으면 될 줄 알았던 임신은 저희 부부에게는 참 어려웠습니다. 임신을 결심하기까지 6개월, 임신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기간만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심하기까지 무려 6개월이란 시간이 걸린 건 신중한 남편의 변덕스러운 결정 때문이었어요.(웃음)


남편은 책임감이 워낙 강한 사람인지라 2세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느꼈습니다. ‘그냥 낳으면 알아서 잘 크겠지’라는 말로는 쉽게 덮을 수 없었던 무게였어요. 동물도 한 번 가족으로 들이면 키우는데 큰 책임감이 따릅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 병원을 자주 가게 되는데, 동물병원은 보험도 안되서 약을 처방받거나, 수술이라도 받는 날이면 그 부담감이 적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된 아이니까 끝까지 책임지게 돼요. 동물 한 마리에게도 이토록 큰 책임감이 따르는데,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책임감이 따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임신이라는 건 혼자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6개월의 기간 동안 남편을 설득시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제가 설득당하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음이라도 먹은 달이면 만반의 준비를 끝낸 저와 달리 또다시 오락가락하는 남편의 모습에 마음이 상해 하루 종일 삐친 날도 있고, 또 어느 날은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해 “그냥 지금처럼 둘이 행복하게 살자.”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답 없는 고민의 시간을 함께 건너다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저희 부부는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월 1일 신년계획을 세우러간 맥도날드




신년 사주를 보러 갔어요. 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올해부터는 아이를 갖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생기나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다들 부적도 쓰고 굿도 하게 되나 봐요.(웃음)


그때부터 신랑이 어찌나 원망되던지! 이랬다 저랬다 한 6개월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일찍 결정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자꾸만 밀려왔어요.


‘사주를 이겨보겠노라!’라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같은 시기에 20년 지기 친구도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참 저랑 비슷했어요. 아기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겁니다. 덕분에 서로 의지가 많이 되었는데, 대화라도 나누는 날에는 둘이서 ‘이렇게 하니 생겼다더라~ 이러면 된다더라’라는 아줌마스러운 대화도 스스럼없이 나누며 함께 웃고 함께 위로받았어요.


그렇게 약 1년 정도를 준비하다 보니 점점 지쳐가더라고요. 제 인생에서 아이는 영원히 안 생길 것만 같은 존재 같고, 괜히 그 사주쟁이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임테기로 확인하는 날에는 마음이 깊은 땅속으로 푹 꺼지는 것처럼 우울해지곤 했어요.


친구의 권유를 받고 난임병원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검사는 받아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난임병원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밝고, 희망이 가득 찬 다른 세상 같았어요. 대기실 화면에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의 영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출산을 축하하는 케이크가 도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기실 곳곳에 긴장한 모습으로 대기 중인 부부들, 병원이 익숙해 보이는 듯 혼자 온 여자분들까지. 그리고 그 속에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를 받은 저희 부부까지 함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랑의 검사 결과가 나왔고, 저는 몇 주 뒤 나팔관조영술 검사를 받은 후에야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둘 다 정상.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고 하시며 우선 2-3번의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자고 하셨어요. “선생님, 1년 동안 임신이 안 돼서 온 건데 자연임신이라뇨? 저는 지금 당장! 뭐라도 해보고 싶어요!!”라고 속으로만 외칠뿐.. 겉으로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알겠습니다.”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전문가이시니까 분명 나름의 이유와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뭇가지에 달린 감은 말갛게 익어가고, 하늘은 드높고 바람은 기분 좋게 선선한 9월이었습니다. 1년간 매번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임테기를 다시 한번 꺼냈습니다. 이젠 꼴도 보기 싫은 임테기! 늘 기대감만 잔뜩 심어 주고 사람 놀리듯 선명한 한 줄만 보이던 그놈. 그런데 “어랍쇼?” 이번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붉은 선한 줄이 하나 더 생깁니다.


“이상하다...” 5분이 지나면 판독하지 말라는 안내 문구가 거짓말인 듯 붉은 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습니다. 고라니처럼 방방 뛰며 저는 그대로 방으로 달려가, 자고 있는 신랑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신랑 눈앞에 임테기를 들이밀자, 신랑은 눈을 비비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임신.. 된 거야?” 제 반응을 보곤 뭔가 좋은 일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봐!! 5분이 지나면 판독하지 말라고 하는데 점점 진해지는 거 보면 맞지 않겠어?!”

그 원장님은 화타였어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기에 찾아와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이번에도 안될 거라 생각하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나날이 짙어지는 확인선을 보며, 인생에서 가장 설레고 벅찬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태명은 동네를 산책하며 지었어요. 집 앞 감나무에 감이 참 예쁘게 익어가고 있었는데, 저희 집 고양이 ‘달’도 이맘때쯤 만난 것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도 같은 시기에 찾아와 줬다는 것이 기분이 참 좋고, 왠지 모르게 운명 같았어요.


저희 집 고양이 ‘달’을 소개하자면, 할머니댁이 있는 남해에서 저녁 산책을 하던 중에 만난 아이예요. 이른바 ‘간택’이라고 하죠. 어디선가 아기고양이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조그마한 치즈냥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불러도 나오지 않던 아기고양이는 한참 후에야 저희를 보곤 기지개를 쭉 켜며 천천히 다가와 앞에 툭 쓰러져 배를 보이며 발라당 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요.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궁디팡팡도 해주며 한참을 놀았어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 아이가 저희를 졸졸졸 따라오는 겁니다. 그 순간, 이것이 바로 ‘간택‘이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약 1km를 따라온 달이에게도 중간중간 큰 고비가 있었습니다. 며칠을 굶었는지 갈비뼈가 보일 만큼 마른 상태였는데, 치킨집 앞을 지나칠 때는 이성을 잃고 말더라고요. 두 앞발을 들어 치킨집 창가에 붙인 채 엄청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겁니다. 저는 야속하게도 이때가 기회다 싶어 도망치려고 했는데, 신랑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달이의 시선을 저희 쪽으로 돌려주니 이내 저희를 보고 막 쫓아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5분 정도 더 걸었을까요? 할머니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접어들 때쯤, 엄청 사나운 개들의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월월월!!!! 달이는 그 소리에 얼어붙어 아예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결국 달이를 안아 올려 할머니집으로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고양이에게 간택당하고 나니,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막막했어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으로 처음 본 저희를 1km나 졸졸 따라왔는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굳건하게 결심했건만..


새벽 내내 달이는 잠도 자지 않고 울어댔어요. ‘집에 가고 싶은 건가? 배가 고픈가?’ 고기를 줘도 먹지 않고, 문을 열어줘도 계속 울기만 했어요. 할머니도 계시고, 삼촌도 계신데 야밤에 고양이가 울어대니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요.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이번엔 함께 뜬 눈으로 지새우던 신랑이 결국 참다못해 그냥 풀어주자는 겁니다.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망설였더니 알아서 돌아갈 거라며.. 그렇게 망설이며 달이를 놓아줬는데, 세상에 풀과 벌레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너무 재밌게 뛰어노는 거예요. 그저 심심해서 그토록 울었던 거였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가도 저희가 보이지 않으면 야옹야옹 애타게 울며 찾았고, 저희가 나타나면 냅다 달려오는 달이를 보고 정말 데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남해에서 부산으로.

그렇게 달이를 9월에 만나 첫째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소중한 가족으로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도 9월에 찾아오다니. 소중한 생명들이 저희들에게 찾아와 준 이 달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꽃감’ 태명이에요. 꽃게와 감을 합쳤어요.(웃음)

9월 초 꽃게 한 박스를 주문했는데 박스를 여는 순간, 꽃게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끼야아아아아~~~!” 살아있는 꽃게가 어찌나 파닥거리던지, 기절시키는 법을 검색해 때려도 보고, 물에 담가도 봤지만 좀처럼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물탕을 끓여 먹었는데, 그 싱싱함은 정말 대단했어요. 살은 빈틈없이 꽉 차있었고, 그 맛은 비싼 대게보다 훨씬 진하고 달큰했어요. 재료 본연의 감칠맛과 단맛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싱싱한 꽃게 덕분에 아이가 생긴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는지라 그날의 꽃게와 산책길에 본 감을 더해 태명을 지었습니다.


저희 두 사람에게 꽃감이라는 단어는 24년 9월을 기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아주 소중한 단어입니다.


인연이란, 애써 노력하고 욕심으로 붙잡으려 할 때는 좀처럼 닿지 않더니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바라지 않을 때 어느새 조용히 다가와주더라고요. 좋은 인연은 내 마음의 욕심이 사라지고, 가진 것을 놓을 줄 알고, 기꺼이 나눌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만나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만 졸졸 따라다니는 달이와 배 속에서 꿈틀꿈틀 대는 꽃감이가 있어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25년 4월, 만개한 벚꽃은 흐드러지듯 흩어지고,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잎들이 가득 피어납니다. 그리고 배가 쏟아질 듯 불러온 만삭의 몸으로 계절의 봄과 인생의 봄을 함께 맞이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것만 같아요. 행복한 날들도, 버거운 날들도 기다리고 있겠지만 잘 이겨내고 싶습니다. 분명 많은 시행착오도 겪을 텐데 그 모든 순간이 성공으로 가는 실패였으면 좋겠어요.


이제 곧 출산을 하면 한때 여유롭고 온전히 내 것이었던 주방도 조금씩 달라지겠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 고요한 순간들, 혼자 느긋하게 차를 끓이고, 조리도구를 꺼내던 아주 사소한 일상들까지 마음껏 느끼고 오래 담아두고 싶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레시피는 만드는 과정도 먹는 시간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한 그릇. ‘돌나물 참치 비빔밥’입니다.



돌나물 참치 비빔밥

1. 그릇에 밥을 담고,

2. 씻어둔 돌나물을 가득 올려줍니다.

3. 기름 뺀 참치와 반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를 올리고

4. 고추장, 참기름을 더해 맛있게 비벼 먹습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