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짜리 텃밭, 나도 농부가 되었다.

도토리묵무침

by 자몽씨

이번 여름은 4월부터 시작될 거라는 말과는 달리 요 며칠사이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심지어 강원도 지역에는 만개한 봄꽃 위로 눈까지 내려 쌓였다고 해요. 부산에서 강원도 여행을 갔다가 4월에 눈구경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뉴스 인터뷰하는 분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도 강원도로 눈 구경을 하러 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잠시 들었습니다.(웃음)


날이 풀리면 심어두려고 사둔 모종을 아직도 심지 못하고 있어요. 어서 날이 좀 따뜻해져야 모종도 심을 텐데 말이죠.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 냉기 가득한 비바람이 한차례 몰아치더니, 이제야 날씨가 조금씩 평년 기온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침에 날씨를 보며 ‘오늘 모종 심기 딱 좋은 날이구만!’하고 결심한 뒤 출근을 했어요. 그리곤 퇴근하면 바로 심을 생각에 나름의 계획도 세워뒀죠.


퇴근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흙부터 챙겨 마당에 나갑니다. 칼로 지익 그어 흙봉지를 열고 화분 위로 탈탈탈 털어낸 다음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가며 흙을 다져줍니다. 손가락으로 점을 찍듯 간격을 재고, 다시 흙을 파냅니다. 특히 루꼴라 모종은 꽤 커서 흙을 깊게 파내야 했어요. 그렇게 루꼴라 모종 4개와 방울토마토 모종 2개를 심고, 마지막으로 물을 듬뿍 뿌려줬습니다. 처음 심어 보는 작물이라 그런지 지금 너무 설레요.




결혼 전 텃밭이 있는 주택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아빠가 그 작은 텃밭공간을 정말 정성껏 가꾸셨어요. 사진 한 장 찍어두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울 만큼 정말 예쁜 텃밭이었어요. 텃밭은 네모 반듯한 땅이 아니라 이등변삼각형처럼 조금 길쭉한 땅이었는데, 그 공간 안에는 상추, 깻잎, 오이, 가지, 고추, 대파,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들이 알차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작고 큰 돌들을 이용해 작물별로 공간을 나누었는데 자연스레 흙길이 나면서 아늑한 시골마을에 온 듯 정말 예뻤어요.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텃밭 맨 안쪽에 매실나무를 심으셨는데, 그 해 가을 이사를 가게 되어 매실꽃도, 매실도 보지 못하고 그 집을 떠나야 했던 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빠는 늘 퇴근 후에, 옷을 갈아입으시고 모자를 쓴 채 텃밭으로 나가 밭을 가꾸셨어요. 특히 여름이 되면 하루 종일 텃밭에 계시곤 했죠. 따야 할 작물들도 많았고, 가지치고 손봐줘야 할 작물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바바’라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종종 텃밭에 들어가 밭을 해 집어 놨어요. 그러면 아빠는 늘 화가 나 바바를 쫓아내곤 했는데, 바바는 그게 또 재밌는지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도망쳤다가 다시 밭으로 슬쩍 들아와 아빠 속을 뒤집어놓곤 했습니다.


그때 심은 작물들은 하나같이 모양도 제각기였는데, 오이가 그렇게 휘어지듯 자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마트나 시장에서 보는 오이는 늘 반듯한 모양이라 저절로 곧은 모양으로 자라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키워보니 S자, C자 모양으로 휘어지며 곡선으로 자라더라고요. 방울토마토는 또 왜 그리도 풍성하게 열리던지, 매일같이 따서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는데 먹다 먹다 지쳐 쳐다보기만 할 뿐 나중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과일을 유독 좋아하는 남동생이 냠냠냠 맛있게 다 먹었다지요. 상추와 깻잎도 끝없이 자라서 주말이면 저는 밭에 나가 상추와 깻잎을 따고, 엄마는 고기를 준비해 가족모두 다 같이 둘러앉아 삼겹살파티를 열곤 했습니다. 그래도 깻잎은 너무 많이 나서 엄마는 늘 장아찌나 깻잎찌를 만들어두셨어요.


그 후,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아빠는 텃밭대신 집 안에서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셨어요. 결혼 전에는 식물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결혼 후 가끔씩 집에 들르면 식물들이 점차 늘어나있어 가끔은 식물원에 온 기분이었습니다.(웃음) 처음엔 아빠가 ‘시골사람이라 뭘 키우는 걸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 역시 식물 키우는 걸 참 좋아하더라고요.




신혼집이 새집이라 그런지 처음엔 좀 삭막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동향인 집에 맞춰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스파티필름과 몬스테라를 데려와 주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 두었습니다. 몬스테라는 두 줄기가 연약하게 나 있는 어린잎이었는데 수경재배가 가능하더라고요. 얇은 실린더 비커 같은 용기에 담아두고 조심조심 키웠어요. 그런데 식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신랑은 자꾸 몇 번이고 물을 쏟았고, 결국 유리병까지 깨트려 그 뒤론 작은 화분을 구매해 흙으로 옮겨 키우게 되었습니다. 물을 엎을 때마다 신랑은 치우라며 잔소리를 했지만, 하루하루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는 식물들이 언젠가 새잎을 내고 꽃을 피어내는 순간이 올 거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새잎을 내고 꽃이라도 피우는 날이면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피어난 생명이 너무 소중해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아침인사를 건네며 잘 자라고 있는지 상태를 살피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은 부족하지 않은지, 바람은 괜찮은지, 햇빛은 충분한지 꼼꼼하고 정성을 다해 돌봤습니다. 시간이 지나 돌돌 말린 잎이 조금씩 펴질 때면 그 보드라운 촉감은 어찌나 신기한지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연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 좋았어요.


스파티필름과 몬스테라는 정말 잘 자라 주었어요. 스파티필름은 분갈이를 거쳐 이제 두 개의 화분에서 싱그럽게 자라고 있고, 몬스테라는 처음엔 여린 잎만 내더니 이제는 제법 멋을 아는 식물처럼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뚫린 잎을 내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났는데, 하나 뚫린 잎, 두 개, 네 개 뚫린 잎을 내다가 이제는 아주 멋들어진 잎사귀를 피웁니다. 어느덧 저희와 7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어요. 요즘엔 신랑도 “그때 봤던 애들이야?”라며 신기해하며 다가가 한참을 들여다보곤 합니다.(웃음) 작고 여리기만 했던 식물들이 우리가 성장해 온 시간만큼 스스로도 멋지게 자라났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안겨주기도 해요.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요. 이 집에서는 약 8개월 정도만 잠시 머물다 나가야 해요. 이후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거든요. 그래도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야 하기에, 문득 아빠가 여름 내내 텃밭을 가꾸시던 모습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럼 지금쯤이면 모종을 심어야 할 텐데!’ 싶어 부랴부랴 모종과 화분을 구매했습니다.


주택에 살면 가장 좋은 점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안방 창문 옆 작은 화단에선 동백꽃과 매화가 피어나고, 맞은편 주택 담벼락 너머로는 노란 황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걸 매일 볼 수 있어요. 또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주방에서 아침거리를 준비하는데, 그때 들려오는 참새들의 청량한 지저귐은 기분을 참 좋게 해 줍니다. 아, 그리고 이 동네 까마귀들은 어찌나 희한하게도 우는지 ‘까까까’하며 자기를 알리는데 그 울음소리가 웃겨 피식 웃곤 합니다.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은 날, 분무기로 물을 듬뿍 뿌려 줬더니 애들이 힘없이 축 늘어지더라고요. ‘물줄기가 셌나..’ 걱정이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다시 가서 봤더니 잎이 쫘악 펼쳐져 쌩쌩하게 올라왔더라고요. 그렇게 안심하고 한참을 구경 중이었는데, 윗집 주인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외출을 위해 내려오고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자, 마침 할 말이 있었다며 급히 집으로 올라가시더니 안 쓰는 화분을 들고 와 저에게 건네주셨어요. 그러면서 모종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오이는 엄청 크게 자라니까 여기 따로 심으면 좋다고 말이에요. 루꼴라와 방울토마토를 같이 심어놓은 화분을 보시곤 방울토마토도 나중에 엄청 자란다며 따로 옮겨 심으면 좋다고 알려주셨어요. 햇빛이 잘 드는 위치도 콕 집어 알려주시며, 오이는 여기에 두라며 아낌없이 조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웃음) “새댁처럼 보여 이런 거 좋아하는지 몰랐네”라며 이야기하실길래 “주택에 살면 꼭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아침부터 정겨운 도시 농부들의 대화가 오갔습니다.(웃음)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물줄기를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 얼른 식탁에서 마주하기를!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 기다림이 요즘 제 하루를 설레게 합니다.




오늘은 그날을 고대하며, 제가 좋아하는 ‘도토리묵무침’ 레시피를 알려드릴게요. 이 요리는 상추가 꼭 들어가야 맛있어요. 상추가 무럭무럭 자라 제 손바닥만 해질 때 가장 먼저 이 도토리묵무침을 만들어 식탁에 올릴 예정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미리 레시피를 기록해 둘게요.



도토리묵무침


1. 상추와 양파 그리고 고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오이, 당근, 쑥갓 등 자유롭게 야채를 추가해도 좋아요)

2. 묵칼을 이용해 도토리묵 1모도 잘라주세요.

3. 냉장고에 넣어 둔 도토리묵이라면, 끓는 물에 가볍게 데친 후 찬물에 헹구지 말고 채에 담아 식혀줍니다.

4. 볼에 야채를 담고, 진간장 2T, 고춧가루 1/5T, 매실청 1T, 설탕 1T, 식초 1/2T, 다진마늘 1T, 깨를 넣어 버무려주세요.

5. 잘라둔 도토리묵을 넣어 살살 버무려주면, 맛있는 도토리묵무침이 완성입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