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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11. 2023

단순한열정_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서평 쓰기 7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진다면  

단순한열정 / 아니에르노 / 문학동네 / 2001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오로지 경험한 것만을 쓴다.’는 아니 에르노. 그렇기에 그녀의 생애를 아는 것은 작품을 읽고 평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단순한 열정」을 잘 읽기 위해서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에르노는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교수다. 그녀는 1940년 노르망디의 식료품 가게 딸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딸에게 투사한 어머니로 인해 사립학교에 진학한다. 그녀는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하위계층인 자신과 부르주아 계급의 친구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강렬한 ‘계급의식’에 휩싸인다. 나는 프랑스가 성과 문화에 대해 우리보다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신분의 계급적 경계가 공고(鞏固)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오래 유학한 작가 조승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쉽다.       


50억쯤 벌어 청담동에 집을 사면 ‘상류층’이라는 지위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상류층’은 오래 내려온 전통과 취향, 그들끼리만 통용되는 언어 등으로 두텁게 둘러싸여 있다. 돈으로 그걸 넘어서긴 어렵다.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중 프랑스 V S한국 문화 차이의 역사적 이유. 갈무리)    

  

에르노는 학업으로 그 경계를 넘어 지배계급에 당도하였다. 각고의 노력과 집념이 필요했으리라. 문학 교수가 된 그녀는 결혼을 통해 지성인으로의 삶을 다진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온 구별 짓기의 벽을 허물어 지배계급에 입성했지만, 자신의 치부를 벌거벗기는 글쓰기로 품위와 명성을 집어 던진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교수와 정부 관계자의 불륜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부류의 사건을 떠올려선 안 된다. 그와 같이 누군가에 의해 벌거벗겨진 허영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녀 스스로 계급적 하강을 선택한 것이다.  


저에게 글쓰기가 의미하는 것의 결론은 사회적인 현실 속으로 하강하는 것이죠. 여성들의 현실, 역사의 현실, 우리가 공동으로 함께 겪은 것들 속으로, 그러나 제가 개인적으로 겪었던 것들을 통해서요.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와의 인터뷰 중에서)      


자, 이제부터 「단순한 열정」을 통해 그녀의 벌거벗은 글쓰기를 살펴보자.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모두 단순한 열정에 나오는 문장이다. 여기서 그는, 열세 살 연하의 외국인이며 유부남이다. 심지어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아들들에게 일러두었다.’라며 사랑 앞에서 자식도 뒷전이었던 자신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그가 혹시나 에이즈라도 남겨 놓았을 것 같아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문구였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까 하는 공감보다는 병적 집착으로 느껴졌다. 상대가 외국인이라 대화도 잘되지 않았다는 점. 데이트다운 데이트의 기억은 없고 오로지 방안에서 성관계에만 집착한다는 점. 불륜이라 쓰고 섹스파트너라 읽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녀는 왜 이렇게까지 솔직한가? 독자라면 누구나 품을 이 질문을 예상한 듯 에르노는 말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스무 살 때는 피임도 하지 않은 채 겁 없이 섹스를 즐겼던 것처럼 나중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열정 p.35)     


그러니까 충동적 섹스처럼 쓰고 싶으니 쓴다는 거다. 그녀는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열정 p.66)      


어쩌면 그녀는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은가보다. 어린 에르노는 동경했던 부르주아의 삶을 향해 달렸고, 부르주아가 된 후에는 낙태의 경험과 불행한 결혼 생활의 기억을 배출하며 불평등한 현실사회로 달렸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내밀한 욕망, 내면적 열정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것 아닐까?      


확실한 것은 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낱낱이 해부하여 써 내려간 것들은 소설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적인 기록이지만, 사회학적 해석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했고, 각 개인의 삶에 침투하였다. 나에게도 그랬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의 과거들이 떠올랐다. 그녀 덕분에 청년 시절 나의 궁핍이 자기연민이나 열등감으로 점철되지 않고, 사회학적 재평가의 기회를 얻었다. 아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에르노가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부르디외식으로 (부유한 친구에게 느낀 이질감의 근원은 아비투스였고, 내가 받은 소외는 상징폭력이었다고) 아무리 되뇌어 봐도 그때 만들어진 열등감이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자기연민을 줄이는데 아주 쬐끔... 도움이 된다. 


어떤 열렬한 독자처럼 아니 에르노가 내 삶을 바꿨다. 까진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대학 때 나의 가슴에 콕 박힌 문구가 떠올랐다. 늦은 밤까지 책장을 뒤지다 찾아낸 오래된 문장.     



그녀는 여러분 안에 그리고 내 안에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침대에 재우느라 오늘 밤 이곳에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여성들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살아 있지요.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또 다른 한 세기 정도를 살게 되면 - 우리 각자가 연 오백 파운드와 자신의 방을 가진다면, 우리가 자유의 습관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진다면,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내어 태어날 것입니다. (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울프, 1929)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글을 쓰고 꼭 한 세기가 흘렀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진 여자. 바로 아니 에르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예언처럼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 자기 생명력을 끌어내어 환생한 것만 같다.     

   

생각 정리와 서평쓰기(수강중인 글쓰기 강의 제목)... 큰일이다. 이제 첫 번째 시간이고 앞으로 읽을 책이 구만리인데, 에르노의 다른 책들도 모두 읽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칼 같은 글쓰기.... 세월.... 빈 옷장... 부끄러움.... 하아...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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