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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y 03. 2023

설국_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서평 쓰기 8

무용(無用)한 아름다움의 세계 속으로

『설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설국』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온다. 서양 무용을 연구하며 무위도식을 즐기는 시마무라, 게이샤로 살아가는 아름답고 가엾은 고마코, 순수하고 지고한 순정을 보여주는 요코이다. 시마무라는 부인과 자식이 있는 중년의 재력가다. 가족이 있는 도쿄를 떠나 눈의 고장 설국을 여행하게 되고, 그곳에서 고마코와 요코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연애 이야기, 즉 로맨스로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 그러한 편견이 움텄는지 모르겠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읽으니 주인공 시마무라가 참 꼴불견이었다. 로맨스의 장르적 성공에 남자 주인공의 매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7할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육체적으로) 빠져들면서, 요코에게는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적 동경의) 감정을 느낀다. 각자가 가진 상대적 매력이야 이해하지만, 두 여자를 동시에 좋아하는 모습에서 매력이 떨어졌다. 그렇게 고까운 마음으로 시마무라를 바라보니, 하는 말들이 다 걸린다.       


어린 접대부였던 고마코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매일 일기를 썼다. 소설의 제목과 주인공, 줄거리를 정리해 놓은 잡기장이 열권이나 되었다며 시마무라에게 보여준다. 그때 그가 내뱉은 말은 ‘헛수고군’이다. 소설이나 영화, 연극에 대해 몇 달이나 굶주린 것처럼 밝게 이야기하는 고마코를 바라보며 그는 ‘헛수고’라는 감상에 빠지게 된다. 고마코가 약혼자의 치료비를 위해 게이샤로 나섰고, 요코는 그 약혼자의 새 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마무라는 다시 한번 ‘헛수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약혼자는 중병에 걸려 얼마 못 가 죽게 생겼는데, 몸을 팔아 요양시킨 고마코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질타한다.      


얼마 전 TV에 김희애가 나와 아들에게 이불정리는 스스로 하도록 잔소리한다 했다. 옆에서 듣던 조세호가 ‘아니, 어차피 밤에 와서 또 잘 건데, 왜 이불을 개야하냐’고 아들 편을 들자. 김희애가 소리친다. 그렇게 치면 비빔밥은 왜 먹느냐고! 그러니까, 조세호에게 이불 정리가 헛수고이듯 시마무라에게 게이샤가 될 운명인 여자가 쓰는 글, 죽을 목숨인 병자를 돌보는 일, 이루지 못할 사랑은 헛수고 인걸까? 아이들이 어지럽힐 것을 알면서도 깨끗이 청소해야만 속이 편한 고마코의 성정 역시 그에겐 헛수고로 여겨질 뿐이다.      


그는 정말이지 로맨스의 남주인공으로 적합하지 않다. 고마코에 대한 애착이 늘어갈수록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꼴이라니, 비빔밥은 왜 먹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이럴 거면, 설국에는 왜 가는가? 고마코는 좋은 사람이니 잘 대해주라는 요코의 부탁에도 냉정하다. 그의 대답은 ‘나로선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p.117) 이렇게  『설국』은 실패한 로맨스로 남는 것일까?

    



다르게 보자. 이 글은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다. 문장의 아름다움, 묘사의 서정성에 방점을 찍어보자.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일본 문학의 최고 경지’라는 소개처럼 『설국』에서 그리는 자연과 계절, 그리고 색채감은 정말 아름다워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첫 문장부터 대단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마지막 문장도 못지않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그가 묘사하는 장소로 독자를 일순간 초대한다.       


색채에 대한 표현도, 소리에 대한 표현도 참으로 미문이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雪) 이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어느새 해가 뜨는지 거울 속의 눈은 차갑게 타오르는 듯한 광채를 더해 갔다. 그럴수록 눈 속에 떠오른 여자의 머리카락도 선명한 자줏빛이 감도는 검정색으로 한층 짙어졌다. (p. 44)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 준 교토산 옛 쇠 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솔바람 소리는 두 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p. 134)       




그럼에도 마음 한켠, 해소되지 않은 마음이다. 석연하지 않은 마음으로 작가의 이모저모를 찾아보았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낭비와 헛수고의 소산이다.」(강미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세계」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발언이다. 자신이 일생을 바쳐 투신해 온 세계를 낭비와 헛수고의 소산이라고 하다니.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그는 문학을 무엇보다 사랑했을 테다. 시마무라가 말한 헛수고의 대상을 문학으로 치환시켜보자. 그의 허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문학은 무용한 것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감상에 젖곤 한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p.110)  


다시 읽은 문장이 새로웠다. 아무래도 편견을 지우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눈雪의 세계는 일독(一讀)으로는 닿기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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