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Feb 23. 2023

암흑의 핵심_조지프 콘래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서평쓰기 1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                                                                           

“인생이란 우스꽝스러운 거야.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悔恨)이나 거둬들이게 돼.”      


 커츠가 누구인가 보다 커츠를 바라보는 말로에 대해       


 『암흑의 핵심』은 식민지 정복을 위해 대륙을 항해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선원으로 콩고를 항해한 작가 콘래드의 자전적 기록을 ‘말로’라는 인물의 회상을 통해 소설로 풀어냈다.     

 

▲ 고무 채취량을 하루 못 채우면 손 하나를, 두 번째로 못 채우면 다리 하나를 잘랐다. 어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AFP 제공사진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때, 콩고에서의 착취는 타 유럽인도 학을 떼며 경악할 정도였다. 그 중심엔 벨기에의 국왕, 희대의 악인 레오폴드 2세가 있다. 그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의 팔다리를 무자비하게 잘랐다. 어린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손목, 발목을 차례로 자른 다음 마지막엔 목을 잘랐다. 폭정을 박애주의로 포장했기 때문에 참혹한 실상은 뒤늦게 알려졌다. 더러운 시체를 가리던 바리새인을 꾸짖는 예수처럼 말로는 브뤼셀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한다. 실제 콩고를 경험한 작가 콘래드의 환멸이 느껴진다.       


글에서 묘사하듯 말로의 서술은 ‘옅은 안개’요 ‘흐릿한 달무리’같다. 어려운 글이었다. 읽는 것도 어려운데, 글을 쓰려니 오독(誤讀)의 걱정이 앞섰다. 논문부터 학술지까지 잡히는 대로 자료를 읽었다. 같은 인물과 상황에 대해 학자 간의 견해가 다름에 놀랐다. 그런데도 자기만의 관점과 해석의 틀로 논리를 완성함에 더 놀랐다. 고전 읽기에 정답은 없다는 상투(常套)가 진리(眞理)의 관을 쓰고 다가왔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해석되는 것이 고전의 힘이다. 나의 초고에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변명이 길었다. 나는 오로지 서술자 ‘말로’에 의지해 읽었고, 그를 중심으로 썼다. 

        

믿을만한 사람 말로

말로는 믿을 만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더운 날씨 탓에 기절하는 동행자를 위해 재킷을 벗어 펼쳐 줄 정도의 인정을 가지고 있다. 거짓말이라면 구역질을 할 정도로 진실 된 사람이다. 금욕주의자의 모습을 한 우상(偶像)과 같다. 돈, 명예, 안락한 삶을 쫓아 식민지를 약탈해가는 유럽의 정복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가 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를 대륙의 중심이자 지구의 중심. 그의 표현대로라면 암흑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가?        


커츠그는 누구인가?  

콩고 땅에 들어선 이후, 말로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커츠’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커츠에 대한 평가는 신에 가깝다. 비범한 사람이요. 만사에 능하다고? 처음엔 의심하던 말로지만, 주체할 수 없이 호기심이 인다. 무능하고 이기적인 지배인(유럽인들)과 커츠는 상반된 인물로 묘사된다. 지배인은 지성도 갖추지 못한 채 ‘불안감만 불어넣는 텅 빈 인간’인 반면 커츠는 ‘현실을 등진 채 밀림으로가 일을 해 내는 멋진 사람’이다. 어느새 말로의 배는 커츠를 향해 전진한다. 병든 커츠를 데리고 오는 임무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커츠 자체이다.     


커츠가 원주민을 장악할 때 어떤 이념적 도구를 사용했는지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와 주변인들이 조각조각 남긴 문장에서 유추해 낼 뿐. 분명한건 그것은 강력했고 원주민에게 견고한 신념 체계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말로는 무자비한 도구가 사용된 현장을 똑똑히 목도(目睹)한다. 제례를 빙자한 살인과 야만적 풍습 말이다. 그런데도 커츠를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변호한다. 푸주한과 경찰관이 지켜주는 안락한 곳에 사는 너희는 감히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의 행동이 아닌 이념(목소리, 말, 담론으로 그들에게 전달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운다.      


말로에 대한 의심과 실망  

말로에 대한 의심이 깊어진다. 이 글의 주제 의식을 말로에게서 찾을 거란 기대를 내려놓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커츠의 ‘무서워’라는 유언. 말로는 그것이 무수한 패배, 끔찍한 공포를 대가로 치르고 성취한 하나의 긍정이요, 도덕적 승리라 치켜세웠다. 그것이 끝까지 커츠에게 충실한 이유라 할 만큼 감화된 말로였다. 그러나 커츠의 약혼자에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죽었노라 위증한다. 약혼녀는 평생 거짓말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커츠가 남긴 글을 찢어 없애기도 한다. 거짓이라면 구역질할 정도로 싫다했던 말로였는데!      


미지로의 모험을 꿈꿨던 말로는 아프리카로 떠나 암흑의 에너지에 매혹되지만, 탐험에서 찾은 건 이기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추한 몰골을 드러내는 유럽인들뿐이었다. 말로는 그 ‘꼴사나운 행위를 대속(代贖)해줄 흔들리지 않는 이념’을 구하다가 그것을 커츠라는 인물에게서 발견한다. 그러나 커츠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우월감과 지배욕이 가득한 타락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커츠보다 ‘말로’에게 주목하고 싶다. 말로와 같이 평범한 우리도 견고한 신념체계를 선물 받는다면 언제든 악인의 편에 설 수 있는 무서운 진실. 악(유럽의 정복자)을 증오하지만, 또 다른 악(커츠)을 추구하는 말로의 표리부동, 말로의 모순! 그가 찾고자했던 암흑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있던 것 아닐까?       


인생이란 우스꽝스럽고무자비하고뒤늦을지라도     

 콩고가 독립한 이후 벨기에는 레오폴드의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며, 선행만을 골라 추앙했다. ‘아프리카 경제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논리로 모욕을 재생산하면서. 콩고 독립 후 진정한 사과 없이 침묵한 세월이 60년이다. 2020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피 칠갑의 능욕과 함께 동상이 철거 되었다.      

▲ 옛 국왕 레오폴드 2세의 흉상이 철거되고 있다. 이 흉상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벨기에로 확산한 가운데 최근 훼손됐다. [AFP=연합뉴스]

‘인생이란 우스꽝스러운 거야.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悔恨)이나 거둬들이게 돼.’      

나에겐 이 말로의 독백이 콘래드의 목소리로 들렸다. 망망한 바다에 내던져진 자신의 생을 끝끝내 건져 올려 삶의 경지에 올라선 조지프 콘래드의 생생한 목소리! 너무 늦게 찾아와 지울 수 없는 회한을 거둔다 해도, 앎을 향한 여정은 멈추지 말아야한다. 인생이란 우스꽝스럽고, 무자비하고, 뒤늦을 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