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관혼상제(冠婚喪祭) 적 혹은 현모양처(賢母良妻) 적 삶에 충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 나로서는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남녀 주인공 네 명의 서사(철저히 개인에게 집중된)중 그 어떤 것에도 익숙지 않다.
와닿지 않았다고 쓰진 않았다. 이 네 인물의 장대한 서사가 정말이지 계속 부대꼈지만, 종래에는 나에게도 와닿았기 때문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 영혼과 육체 - 이해받지 못한 말들 - 다시 영혼과 육체 - 다시 가벼움과 무거움. 여기까지 읽으며 (스토리는 흥미진진했으나) 작가의 의도대로 제대로 읽긴 하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괜스레 읽은 장을 읽고, 또 읽어봐도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평 쓸 일이 막막했다. 그러나 6부 대장정에 이르러 이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나에게도 와닿았다. (그러니 지금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6부까지가 고비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무엇이 부대꼈는가?
외과의사 토마시. 매력 넘치는 그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어 한 해에 200명의 여자를 만난다는 것. 저것도 병이다 싶지만, 못 받아들일 건 없다. 그러나 그의 아들 시몽에 대한 태도는 심히 부대낀다. 시몽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 토마시를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대변하고, 끝까지 그리워하는데 반해, 토마시는 마지막까지 무정하다.
테레자는 바람둥이 토마시를 사랑해서 평생 질투로 고통받는다. 심장을 꺼내 볼 수 있다면 까맣게 멍들어있을 것이다. 괴로움의 미로를 빠져나오기 위해 호색한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간단하고 명료한 해결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녀는 되려 사랑과 성행위가 같은지 다른지 시험하기 위해(토마시의 변명을 믿어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원하지도 않은 상대에게 주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치욕의 극단까지 몰아세우고 무한한 우수와 고독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이 비참한 사랑이 부대낀다.
사비나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어 사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프란츠는 버림받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사비나의 시선을 갈구한다. 프란츠가 거짓이 싫다며 정부에게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이나, 그 사실을 안 사비나가 당장 짐을 빼 도망가는 장면이나, 하나같이 철이 없고 배려가 없다. 20년을 함께 산 부인이고, 20년을 함께 산 부인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사람인데,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가볍지 아니한가! 이 인간 군상들이 어찌 아니 부대낄 수 있겠는가?
무엇이 와닿았는가?
사비나는 공산주의 행군 장면을 보며 아름다운 가면에 숨겨진 추함을 발견하고, 미국의 상원의원이 펼치는 작위적 행복론에서 위선을 본다. 9시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야당도 여당도 한 목소리 높여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추함과 위선들! 아. 그것이 키치구나! 한 번에 와닿았다.
사비나는 자신의 키치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지혜로운 아버지가 군림하는 평화롭고 부드럽고 조화로운 가정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나의 키치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다. 이 글의 시작에 이미 써 놓았다. 관혼상제와 현모양처 적 삶의 지향이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입시에 성공하면 취업, 취업 문 통과하면 결혼,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첫째 낳으면 둘째도 낳아야 하고, 그 첫째가 다시 입시에 성공해야 하는 21세기식 관혼상제. 거기에 세워지는 성공의 기준들은 나의 삶을 무겁게 했다. 살아야 하는 아파트 평수, 타야 하는 차, 입어야 하는 겨울 패딩, 엄마들 사이에 권력이라는 자식의 성적. 디테일한 기준의 무게로 정말이지 곧 침몰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p.415)’
그렇다. 우리는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뫼비우스 띠와 같은 삶의 굴레에서 괜찮은 척, 행복한 척일지라도 자신만의 키치에 기대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작가는 「슬픔은 형식이고 내용은 행복」이었노라 말한다. 「행복이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고 끝맺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외과의사라는 멋진 신분에서 도시의 노동자로, 거기서 다시 시골 농부로 침몰하는 토마시와 테레자. 그들의 곁에는 애완견 카레닌이 있다. 글을 읽으며 깊은 페이소스를 느낀 것은 카레닌이 죽는 장면이 유일했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테레자를 사랑해 준 카레닌. 그저 존재만을 요구하는 사랑.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p.506)
관혼상제와 현모양처는 나의 사전에서 지워보자. 다 헛소리다. 그것은 내 임무가 아니다.
대신 마흔부터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 존재만을 요구하는 사랑. 그것을 한번 연구해 보자.
* 추천 :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았던 책이다. 다 읽고 보니, 자주 들춰 보게 될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읽어보면 알 것 같다. 유튜브 일당백에서 5회에나 걸쳐 이 책을 다루었는데, 많이 도움 되었고 정말 재미있었다. 책을 읽기 전 후 독후 활동?으로 매우 매우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