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헤르타뮐러/세계문학읽고 서평쓰기 15
ㅈ『
『저지대』(NIEDERUGEN) 헤르타뮐러 (Herta Müller) 지음, 김인순 옮김, 문학동네
2009년 헤르타뮐러(1953-)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한림원은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청년 헤르타뮐러가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쓴 자전적 이야기 『저지대』를 통해 그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탐구해보자.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이라는 감상은 책을 읽으면 단박에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비유로 가득하여 한편의 시와 같다. 그럼에도 그녀가 겪은 폭력과 공포, 죽음의 욕구에 대해서는 에두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목격한 마을 사람들과 가족의 치부를 드러냄에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느낀 감정에 엄격할 만큼 진솔하다.
내 첫 번째 책이 출판되고 난 후 고향에 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내 집에 들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 “제발 우리 마을을 그냥 내버려 둬, 다른 것을 쓰면 안 되니? 나는 거기서 살아야 해, 너는 아니지만” (백승남 「여성 작가의 ‘아버지’모티브와 모티프;루마니아의 아나 블란디아나와 헤르타 뮐러의 삶과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2018)
작가가 겪은 고초와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까? 한편 궁금증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고향 산천을 떠올리며 이토록 부정적 감상을 남기다니, 도대체 그녀의 유년시절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어린 소녀에게 마을 사람과 가족들은 왜 이토록 차갑고 폭력적인가?
소녀의 어머니는 수시로 아이를 때린다. 아이가 울면 매로 치고는 말한다. ‘자, 이제 너한테도 실컷 울 이유가 생겼다.’ 아이의 볼에는 수시로 매서운 손자국이 남는다. 어느 날은 대답을 하지 않아서 맞고, 다른 날은 대답을 해서 맞는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이따금 아이에게 머리카락을 내어주어 놀 수 있게 하지만, 아이의 손이 얼굴에 닿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녀를 밀어 바닥에 던진다. 그럴 때면 아이는 자신에겐 부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호기심 많은 소녀는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돌아오는 건 핀잔과 폭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나비는 어디서 처음 생겨났어요?” “그런 멍청한 질문 좀 하지 마라. 그걸 누가 알겠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어떤 것이 저녁별이냐’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소리 죽여 멍청이라고 핀잔’을 준다.
그래서 소녀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소녀의 배는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진다. 차갑고 축축한 뱀들이 기어오르고, 비명을 지르며 땀에 젖어 꿈에서 깬다. 소녀는 죽음을 갈망한다.
무릎의 살갗이 벗겨져 쿡쿡 쑤시고 아렸다. 너무 아파서 내가 벌써 죽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무서웠다. 하지만 아직 아픈 걸 보니 살아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벌어진 무릎 틈으로 죽음이 들어 올까봐 겁이 났고, 그래서 얼른 손바닥으로 상처를 덮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었기에 증오를 느꼈다.(p.33)
기차가 내 목에서 달려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 창자를 갈가리 찢어놓고, 내가 죽어도 기차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죽음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이대로 고꾸라지면 죽겠지 싶었다.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예쁜 새 옷을 입혀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눈물을 철철 흘릴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p.113-4)
어느 날 소녀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 배가 물에 잠길 때까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 신을 떠올린다. 종교시간에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신다고 배웠다. 동시에 다른 기억도 떠오른다. 성당에서 신부는 분필을 던지고 매를 들었다. 손바닥이 빨개져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때렸다. 아이는 곧 읊조린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는 않았다.’
가족도, 교회도, 하느님도 아이를 구원해주지 않았다. 사랑을 주거나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그녀를 품어 준건 풀숲과 늪지대. 그곳에 자라난 야생 아르메리아와 버드나무였다.
여름이 내게 무성한 풀밭의 진한 꽃향기 세례를 퍼부었다. 야생 아르메리아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나는 강을 따라 걸으며 팔에 물을 끼얹었다. 살갗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아름다운 늪지대였다.
무성한 풀숲에 누워 나를 땅속으로 졸졸 흘려보냈다. 나는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강을 건너와 내 안에 가지를 치고 이파리를 흩뿌리길 기다렸다. 버드나무들이 이렇게 말하길 기다렸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늪이야. 우리 모두 너를 찾아왔어. 크고 늘씬한 물새들도 데려왔어. 물새들이 네 안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지저귈 거야. 그래도 너는 울면 안 돼. 늪은 용감해야 하거든. 네가 우리랑 같이 지내기로 한 이상 모든 걸 참아내야 해.
커다란 날개를 가진 물새들이 내 안에서 살 수 있게, 내 안에서 날아다닐 수 있게 나는 한껏 넓어지고 싶었다.(p.114-5)
어느새 그녀는 넓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죽음의 목전에서 쇠약해있고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은 사무치는 외로움에서 나옴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죽도록 슬픈 짐승이다. 말더듬이 친구 벤델처럼 마을에는 마음 속 깊이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두려움은 마을 도처에서 마을 사람들을 따라붙는다. 그녀는 넓어지고, 성장했다.
그녀와 마을사람들은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했나? 두려움의 실체는 그녀가 살아온 시간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녀는 독일계 루마니아인으로 바나트 슈바벤이라는 루마니아 변방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은 폐쇄적인 지역이고 고립되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독일어를 사용했고 고향의 풍습과 문화를 고수하며 낡은 규율에 얽매여 지냈다. 나치에 징집되었다가 돌아온 아버지와 같이 전쟁을 겪은 남성들은 술에 찌들어 지냈고,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여자들은 집안일과 청소에 한평생을 혹사당했다. 동시에 독재체제 억압에 고통 받았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핍박과 감시, 위협에서 그녀를 구원해준 것은 글쓰기였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습니다. 삶의 욕구는 낱말의 욕구였습니다. 오직 낱말의 소용돌이만이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낱말의 소용돌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해냈습니다. … 누군가 입을 틀어막으면, 우리는 몸짓이나 심지어 사물을 통해서라도 우리 자신을 주장하려 합니다.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헤르타뮐러/김인순 옮김 『저지대』.문학동네,2010)
어느 날 소녀는 고백한다. 이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익숙해졌고 나를 잃고 싶지 않다.(p.133) 그리고 그녀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쫓아다니던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깨닫는다. 그것은 진짜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혹시라도 두려움을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한 두려움. (p.134) 소녀의 생명력이 끈질기다. 늪지대에서 살아남은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 잊지 못할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은 사람들, 마음깊이 내재된 두려움으로 악몽을 꾸는 사람들, 불면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