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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Feb 13. 2023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서평 쓰기 2

미치광이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출간 후,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예민한 성격, 여러 번의 퇴학, 지질한 여자관계, 굉장한 작문실력 등 작가 샐린저와 주인공 콜필드는 많이 닮았다.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모른 채 읽어도,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콜필드는 어린 샐린저임을. 미치광이가 아닌 사람이 썼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쳐가는 소년의 내면을 생생히 묘사했다.        


콜필드는 한마디로 제어가 안 되는 녀석이다. 감정과 생각, 말과 행동이 깡그리 충동적이다. 거짓말쟁이인 데다 타인을 보는 관점은 분열적이다. 1)  대부분의 사람을 싫어하고 매도한다. 스트라드레이터는 색골이고 애클리는 더럽다. 제인 갤리허가 아닌 여자들은 몽땅 다 무식하고 짜증 나는 존재다. 친구를 욕하는 건 이해가 된다.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므로. 허나 잘 알지도 못하는 교장선생님, 피아니스트 어니, 연극배우 런트부부도 욕한다.


사람의 일면(一面)을 일체(一體)로 단순화시켜 평가 절하한다. 반면, ‘수녀’들이나 ‘앨리’, ‘피비’에 대해서는 맹목적 지지를 보내며 이상화한다.       


이렇다 보니 콜필드를 교화시키려는 주변인의 노력과 조언이 연속된다. (그에게는 잔소리일 뿐이지만) 그중에서 나는 두 번의 정신분석 시도를 눈여겨보았다. 동생 앨리가 죽던 날, 차고의 유리창을 송두리째 깨부순 일로 인해 받게 된 첫 번째 정신분석 상담.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정신과의사인 선배 루스의 권유. 콜필드는 귓등으로 듣는 듯하다. 어느새 나는 콜필드 정신분석에 골몰하게 된다. 2)


그러다 엉뚱한 아이디어 하나가 솟구쳤다. 한 조각 아이디어가 직소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얼기설기 맞춰놓은 퍼즐 위로 어렴풋이 콜필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확신할 순 없다.)   




나의 가설은 피비, 앨리, 홀든(콜필드), D.B는(모두 콜필드의 형제자매다.) 하나의 자아라는 것. 마치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사람의 감정을 슬픔이, 버럭이, 기쁨이, 소심이, 까칠이로 나누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로이트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정신을 이드(id), 에고(ego), 슈퍼에고(super ego)로 세분화시켰다.      


먼저, 주인공 홀든(콜필드). 그는 본능적이고 쾌락을 중시하는 이드(id)이다. 이드에는 두 가지 본능이 있다. 성의 본능(리비도)과 죽음의 본능(타나토스). 이 두 단어야 말로 콜필드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지 않은가? 콜필드는 끊임없이 성(sex)에 집착하고 죽음을 상상한다.

     

‘D.B’는 에고(ego).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현시키기 위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로 간다. 주체적 인물이다. 지적이지만, 재치 있고 사람들과 두루 어울린다. 콜필드가 보통 성인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D.B와 같은 모습일 테다.      


‘피비’와 ‘앨리’ 둘은 콜필드에게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상이다. 특히 ‘앨리’는 자신보다 오십 배는 머리가 좋고,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을 만큼 그렇다. 그러나 앨리는 죽었다.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앨리의 존재는 콜필드에게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왜 앨리와 콜필드를 죽음으로 분리시켰을까? 내막은 모르지만, 하나의 슈퍼에고가 소멸했다. 그러나 ‘피비’가 남았다. 콜필드에겐 작고 어린 소녀가 끈질기게 남아있다.     




정신의 세분화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드와 에고, 슈퍼에고를 조절하여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아의 기능이 좋아지고 삶은 조화로워진다. 통합이 저절로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어디 콜필드뿐이겠는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분투하고 있다. 이 책의 흥행이 그것을 반증하지 않는가?

         

피비는 돌직구를 날린다.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아니라고 우물쭈물하는 콜필드에게 독촉한다. 「그럼 도대체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봐!」  마지못해 콜필드는 호밀 밭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뛰노는 꼬마들이 있다. 밀밭의 끝은 절벽이다. 꼬마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콜필드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 같이 넓은 나라에서 낭떠러지에 호밀 밭을 만든다고? 절벽은 콜필드가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 피비는 정정한다. 「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오빠, 호밀밭에는 길이 있을 뿐이야, 호밀 밭에는 절벽이 없어!’


그렇다 현실 속 밀밭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 그곳에 절벽은 없다.      


나의 가설대로 결론을 내자면, ‘D.B’도 ‘피비’도 ‘앨린’도 모두 다 ‘콜필드’다. 피비의 ‘순수성’과 앨린의 ‘천재성’, D.B의 ‘현실성’ 그리고 미치광이 콜필드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콜필드는 샐린저가 되었다. 미치광이가 대문호가 되어 구십 수(壽)를 누렸다! 나는 열여섯 콜필드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홀든,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잠이나 좀 푹 자!


             


1) 분열(Splitting, 흑백논리 black-and-white thinking, 실무율적 사고/이분법적 사고 all-or-nothing thinking)은 자아와 타자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하나의 형태로 통합해서 사고하는 것이 불가함을 말한다. 위키백과

2) 여러 정신 질환 중에 내가 찾은 진단명은 경계선성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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