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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Feb 08. 2023

멋진 신세계(올더슨 헉슬리)

 세계문학전집 서평쓰기 4 

상상력과 지성의 정점에서 빗어낸 유토피아,

그곳에서 외치는 불행해질 권리      

     

1963년 타계한 헉슬리가 살아 돌아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내가 그린 디스토피아대로 흘러가고 있군. 인류는 망해가고 있어’라는 비관론의 편에 설까? 아니면, ‘인간이 가진 성찰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진보하고 있어!’라며 낙관할까?   

   

100년 전 쓰인 글은 예언처럼 현실이 되었다. 책 초반 시험관 시술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는 모습은 기괴하다. 부화-습성 훈련이라는 단어를 듣자 무심결에 양계장이 떠오른다. 무정란 만들어지듯 시험관에서 생산되는 96명의 쌍둥이라! 괴이한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아직, 모체 잉태는 유지되어 96명의 쌍둥이는 불가하고, 산소 공급으로 인간의 지능을 조절하는 지경에 이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DNA분석 기술의 발달로 배아에서 아이의 성별을 골라 착상시키고 (우리나라에선 불법.) PGS기법을 사용하면 유전병 인자를 미리 검사할 수 있다. 법적 제한이 없다면, 키와 몸무게, 지능까지 선별이 가능할 것이다. 임신 15주에 하는 양수검사는 전체 산모의 필수 과정이 되었다. 검사를 통해 기형의 태아가 발견되면 도태시킨다.       


‘소마’와 같은 향정신성물질에 대한 범용도 무섭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합성 물질을 복용한다. 단 몇그램의 알약만 삼키면, 몇 분안에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샘솟는다. 출산 때 맞는 무통주사, 비아그라나 식욕억제제, 현생의 알파플러스임이 분명한 재벌 회장님이 맞는 프로포폴까지! 세계 최강국 미국은 펜타닐과 전쟁 중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과 같은 통증이 극심한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마약성 진통제인데 무섭게 남용되고 있다.      


신의 자리를 헨리 포드가 꿰찬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수탄생이 아니라 포드탄생으로 인류의 시계(時計)를 바꾸어 놓다니! 기막힌 풍자가 섞여 있는 이 비유 역시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20세기까지 정치와 종교, 사상과 이념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이다. 자본을 만드는 것은 과학기술과 기업이고. 자본, 과학기술, 생산수단. 이 세 개의 톱니바퀴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와도 그의 손엔 아이폰이 들려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헉슬리의 그림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부정할 수 없다. 내 삶만 보더라도 그렇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았는데. 첫째는 15년도에 둘째는 18년도에 출산했다. 그렇지만, 그 둘은 사실 쌍둥이다. 동시에 수정되었기 때문. 15년도에 시험관 시술로 만든 배아를 동결해 놓았다가 18년도에 이식해서 출산을 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체크하는 것이 있다. 내가 투자해놓은 기업들의 주가를 살피는 일. 일명 테크기업. 노동으로 번 돈의 대부분을 기술의 발전에 베팅해 놓았다. (수익률은 아.묻.따 please!) 그리고 마음 아프지만, 가까운 사람중에도 불안과 우울을 조절해주는 약을 먹고 있는 이가 있다.         


그리하여 인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될 것인가? 거대담론으로 보자면, 모르겠다. 반대의 증거들도 많을 거다. 그냥 미시적으로 보자. 그저 내 삶을 기준으로. 내 수명이 육백살 연장되어 보카노프스키 집단으로 살게 되었다 치자. 무스타파 몬드처럼 순수 과학과 통제관의 지위에 대한 선택권이 주워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굉장히 고민될 것이다. 그 선택으로 얻게 될 불행이 결코 적지도, 쉽지도 않다는 걸 안다. 마음이 다하지 않은 연인과의 헤어짐. 소중한 이를 잃는 상실감, 출산의 괴로움, 밥벌이의 고단함, 질병과 가난으로 겪은 고통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순수 과학을 선택할 것이다. 무스타파에게 순수과학과 같은 것이 나에게도 있다.   


작년 연말, 12년을 근무한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몇 날이나 잠을 뒤척였다. 나라는 한 인간을 지탱해온 최소한의 의식주가 흔들리는 망념들이 제멋대로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가끔은 불쑥 찾아오는 불안에 팔이 저릿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퇴직 후엔 나의 근원적 관심사를 찾으리라 마음을 다졌다. 누가 시키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 그저 솟아나는 욕구를 찾고 싶었다. 그런 욕구들은 사실 잘 발견되지 않는다. 바쁘게 살다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얻는 손쉽게 휘발되는 기쁨과 슬픔에 몸을 맡기다보면 계절이 바뀌어 있고, 어느새 뒤돌아보면 내 것이 아닌 욕망을 채웠던 속은 다시 공허해 지고 만다.       


사직서를 제출한 그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수영장에서 만나 말을 트게된 아들 친구 엄마였다. 서로의 옆구리에 끼여있는 책을 보고는 뭔가 통할거라 직감을 했지만, 전화로 들은 제안은 뜻밖이였다. 고전을 읽고 서평을 쓰는 모임에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불안감, 막막함, 두려움을 비집고 기대감과 설레임이 피어올랐다. 나의 욕구를 발견해주고 실천으로 연결 시켜준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무스타파는 과학을 사랑했다. 나는 평생 읽고 쓰는 삶에 대해 동경해왔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p.363)     

기껏 12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을 뿐이다. 명함이 없어졌고, 이름 뒤에 뜻 모르게 붙어있던 ‘과장’이라는 직함이 지워졌을 뿐이다. 그러니 야만인처럼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했다할 만큼 비장하진 않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가 오늘, 나에게 주는 위로는 자못 비장하다.      


“지금 약간의 불행은 당신의 인간됨. 자유로운 인간됨의 표식이다.

 안심하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행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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