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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Feb 07. 2023

삶을 관통하는 글

마흔, 박완서, 말과 글의 힘

이제는 소원해져 더 이상 안부조차 서로 묻지 않는

그 친구와 친해졌던 계기는 박완서였다.


마흔에 등단하셨다는 박완서.


그로 인해 나의 due date은 암묵적으로 마흔으로 미루어져 있었다.


그때는 마흔이 까마득했다.

하루키의 표현대로 21세기라는 것이 실제로 다가와서, 내가 정말 40대를 맞이하게 될 줄은 어린 시절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마흔 즈음이면 나의 삶이, 재능이, 나의 소명이나 그 무엇이 조금은 뚜렷해져 있을 거라 믿으며 살아왔다.


실제 마흔의 나는

재능과 소명 그 비슷한 무엇도 성취된 바 없이

여전히 집합 부근에 머물러있다.


집합이라면 너무했나. 인수분해 정도라 해 두 자.


어쨌든 미분과 적분에는 끝내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다.      


때때로 나에게 남겨진 어떤 정보들은

기막힌 타이밍으로 날아와

삶을 관통한다.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되새김하지 않았던

어떤 문장들은 무심결에 떠올라 솟구치는 무언가가 된다.

  

최근에는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일 뿐이라던 박완서 선생의 말이 그러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참적의 고통 속에서도 글을 써 내려갔다.


한낱 인간으로서는 그저 당해낼 수밖에 없는

생의 무력함 속에서

밑바닥 속에서 찾아낸 단어이기에

와닿았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뎌내는 것일 뿐이다.      


글과 음악과 작가에 대한 감상으로  

새벽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이야기해도

지루한 줄 몰랐던 친구와는

인연이 다하였다.


박완서 선생은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은 남아있다.


그 말과 글이 가진 힘의 크기는

조금도 줄지 않고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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