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다다 쓰는 자의 다짐
새로운 일이 주어졌다.
그에 맞춰 새로운 시간 계획도 필요해졌다. 일정이 조금 복잡해져서 처박아뒀던 다이어리를 꺼내고 평일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시간대별로 모눈칸에 형광펜을 칠하며 원고 쓰는 시간을 빡빡 채워 넣어봤다. 아무리 봐도 내가 짠 계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할 일은 많고, 계획 짜는 요령은 늘지를 않는다. 월간, 주간, 일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가도 결국은 마감 날짜 맞춰서 우다다다 몰아치고 만다. 계획이 소용없다.
피로감과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 루틴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조금씩 나눠 쓰는 일에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마감까지 미루다가 극도로 집중한 그 순간에, 생각나는 모든 걸 다 쏟아낼 때까지 써야 직성이 풀리고 만다. 혹여 쓰다가 ‘시간이 다 됐어’ 하며 중간쯤 끊고 일어설 때는 찜찜한 뒷맛을 느낀다. 여기서 멈추면 이대로 쓰다 만 글이 될까 봐 불안한 것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글을 쓰다 보니 이거 쓰다 저거 쓰는 식으로 스위치 전환이 도통 되지가 않는다. (마음 같아선 하나의 원고-내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면 생활이 안 된다.)
어쨌든 주어진 원고뿐 아니라 내 작품에 대해 생각했을 때도 장기적으로 건강한 쓰기 루틴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여유롭게 여력이 남았을 때 ‘오늘은 여기까지’ 스스로 일을 마치고, 다음날 또 이어서 할 수 있다는 걸 반복해서 경험하면 그 결과,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믿게 될 테고, 꾸준하게 장편을 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 아닌가.
결국 쓰는 루틴의 핵심은 ‘글 쓰는 나’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계획과 루틴이 있는 생활은 미친 듯이 몰입해서 힘껏 달려버리는 내 성향과 달리 하루키 에세이에 나오는 이상적인 모습이라 내가 그렇게 산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내 성향에 맞춰가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신통치 않아도.
루틴에 도움이 될만한 건 뭐든 더 시도해서 올해는 건강한 쓰기 루틴에 꼭 성공하고 싶다. 소진증후군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견고한 자기 신뢰를 쌓기 위해.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