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2년차, 텐팅 뒤 단상
CPR 심폐소생술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뇌에 산소가 3~5분 정도 공급 안되면 돌이킬 수 없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
크게는 기도 확보( 산소를 폐로 넣어주는 것)와 심장 마사지( 멈춰버린 심장을 대신해서 밖에서 가슴을 눌러 심장을 짜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 심장을 뛰게 해 놓고 - 살려놓고 원인 해결은 그 후에.
어젯밤.
오늘 수술할 환자를 보러 병동에 올라갔다.
밥도 못 먹고 오버타임을 한터라 피곤한 데 가지 말까 하다가
목에 수술받은 병력이 있는 환자가 있어서 꼭 봐야만 해서 올라갔다.(1)
그 사람만 보고 갈까 하다 어차피 봐야 할 환자가 3명밖에 안되고
그중에 2명이 같은 방이길래(2) 다 보고 가기로 결정했다.
한분이 계신 입원실에 갔다가 2분이 같이 계신 방에 갔는데 한분밖에 안 계셨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환자가 그사이에 방을 옮기셨단다(3)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그분이 목 수술하신 분이라 꼭 만나야 하는 분인지라
어느 방으로 가셨는지 물어보니 10호.
빙 돌아서 가려고 조금 움직였다가 간호사실을 통과하여 가는 게 빠를 것 같아
간호사실을 통과하는 순간(4) 듣게 된 간호사들 간의 대화
' 빨리 9호실로 와주세요 환자가 이상해요'
의사가 필요할까 가볼까 하다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별일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남의 환자인데 참견하는 것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아 10 호실 문을 열려는 순간(5) 들리는 소리
" 어떻게 해 CPR 방송 내야 하나?"
일단 들어갔다.
의사가 없으니 간호사들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왕.
수술한지는 좀 된 환자이고 괜찮았는데 지금 의식이 없는 거 같다고. 간호사들이 빠른 말투로 말해준다.
얼굴 보니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고.
"산소포화도랑 BP쟤주세요."
SpO2 94%.
"혈압 좀 빨리 쟤주세요" 하고 환자를 보니 입술이 파랗다. 숨은 쉬고 있는데 잘 못 쉬는 모양.
"rate(심박수) 얼마예요?" "112입니다"
심장은 뛰는구나
"앰부 빨리 갖다 주세요"
하고 숨을 잘 쉬게 도와주기 위해 턱을 들었다.
앰부가 도착하고 bagging을 시작했다.
"주치의 연락됐나요?"
"네. CPR방송도 냈어요"
"혈압도 얼른 쟤주세요"
인턴이 가장 먼저 뛰어왔고. 동시에 CPR방송이 나고.
"saturation 떨어집니다"
인턴 한데 앰부를 짜라고 하고 mask를 잡았다.
내가 잡았는데 떨어질 리가 없는데. 혈압이 떨어졌구나
"물 트세요. full drip 해요"
혈압이 측정됐다. "혈압 71/30입니다"
보호자가 눈앞에서 울고 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우리 엄마 죽는 거야? 빨리 오빠 불러.."
EKG가 부착되고. 아직 심장은 뛰고 있다.
CPR방송을 들은 내과 사람들 10여 명이 뛰어왔고. 심장이 멈췄다.
나는 계속 마스크를 잡고 있었고. 내과에서 심장마사지를 하고.
주치의(수술과였다)와 fellow선생님이 뛰어오셔서 나를 확 밀치면서 마스크를 잡으시더니
"마취과 연락 좀 해주세요!!!!!"
-.-a
인튜베이션 하려고 준비하는데 펠로우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이 사람 difficult예요"
이건 우리만 알아듣는 말. tube 넣기가 어려운 사람.
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못 넣으면 이 사람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직 교수님께 전화드렸다. "할 수 있어. 해보고 안되면 전화해."
다시 방에 돌어갔더니 수술과 펠로우 선생님 기다리다 못해 여러 번 실패 중이셨다.
"제가 하겠습니다"
심장마사지를 너무 세게 해서. 흔들리니까 입에 laryngo도 안 들어간다.
옆에서 넣어주셨다. "안 보이네요"
감으로 넣었지만 실패.
다시. 자세 제대로 취하고. 심장마사지 멈추고 심장 뛰는지 보는 사이에 다시 보았더니
'아. 잘 보인다. 바로 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순간'
보호자들이 와서 소리를 질렀다.
"못 살릴 거면 그만둬요! 제발 괴롭히지 말아요!!"
내과애들은 심장 마사지를 하고. 보호자들은 그만두라고 울고. 담당과는 계속하라고 외치고...
일단 넣었다. 성공. 기도확보 성공.
그리고. 조금 후에. 리듬이 돌아왔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거의 90세. 폐렴 환자. 수술한 지 조금 되었는데. 이유 없이... 가 나타나고.... 가 나타나고....
좋아지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살았지만. 몇 시간이나 더 사실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만두라는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오늘 밤쯤에 돌아가시려나. 하루 이틀은 더 버티시려나.
세상은 참 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환자분은. 5가지 정도의 우연이 합쳐져서 최초 발견자가 내가 되었다.
아마. 이런 경우엔. 그래도 가장 살릴 가능성이 많은 과중의 하나인 마취과 의사가 발견했으니.
"지금"을 넘겼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었다면. 최초에 도착한 의사는 인턴. 무언가를 할 줄 알았을 리가 없고.
그다음에 내과 사람들이 오는 데는 거의 5분 가까이 걸렸으니. critical time이 지나가버렸을 것.
하지만. 지금 몇 시간을 선사한 게. 과연 이 환자에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확인하진 않았지만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졌을 것이고.
환자는 고통스러웠을 텐데. 보호자들은 그것을 보았고.
그 상황에서 몇 시간 더 사시게 한 것과 아니었던 것 중 무엇이 환자에게 좋은 상황이었을까.
물론 내가. 그 곁에 있었던 이상. 모른척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그 시간에. 그 옆방을 가기 위해 그 방을 지나가게 되었을 우연은. 과연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오늘 출근한 후에.
새벽녘에 그 환자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고통의 시간만이 늘어났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펠로우 선생님께서 그 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셨다.
쓸 수 있는 모든 약을 써도 혈압이 오르지 않아서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보호자분께 말씀드렸더니
인사할 사람들 다 올 때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버티시더니. 모두 인사하고 나자.
혈압은 잡히지 않고. 심장이 느려지기 시작했단다.
워낙에 우리 몸은 나빠지기 시작하면 금방이라.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하고 옆에 있었는데.
환자 심장이 점점 느려져서 HR이 30쯤 됐을 때쯤. 환자의 딸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자신의 아들에게.
"할머니 가방에 묵주 있으니까 그것 좀 빨리 가져와"라고 하였고. 손주가 묵주를 가지러 간사이.
갑자기 심박수가 더는 느려지지 않고 30에서 계속 유지가 되더란다
.
"곧" 임종하실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옆에 있던 의사나.
곧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하고 엉엉 울고 있던 보호자나. 약간.
뻘쭘해진 상황.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한참 후에. 손자가 묵주를 가지고 도착했고.
딸이 어머니 손에 묵주를 쥐어드리자. 심장이 멈추었다고 한다.
...
사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괴로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더더욱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무엇을 위하여 그 사람을 살렸나.
근데.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할머니가. 스스로. 준비하실 시간이 필요하셨나 보다 싶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묵주를 손에 쥘 때까지.
할머니 나름의 이 세상을 정리하시기까지.
펠로우 선생님 말씀이
할머니가 자꾸 어제 아침에 찾아와서 "퇴원시켜줘.. 나 가야 해.." 이러셨다는데.
아마 알고 계셨나 보다고.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수술도 내 손으로 했던 분.
좋은 곳으로 가셨길.
(환자 세부 정보는 사실과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