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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30. 2016

생명을 살리다

마취과 의사, 텐팅 뒤 단상

나는 언제나 사선에 서있는 마취과 의사이다


의사는 종류가 많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은 생각 만큼 많지 않다.

흔히 말하는 메이저과인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그리고 그 외의 몇몇 수술하는 과들: 신경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마취과. 정도 될까.


몇과를 빼먹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은 의사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요"라고 말할 땐

"아니요".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드는데.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이 자리에 있으면 누구나 할만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눈앞에서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하는 것과 같달까. 


하루 종일 혈압이 떨어지거나, 피가 나거나, 숨을 잘 쉬거나, 못 쉬거나, 전해질의 균형이 깨지거나. 하는 방에서 끊임없는 manage를 하고는 있지만. 

수학공식처럼. volume이 부족하면 물을 주고, 약을 주고, 깨진 전해질들을 교정해주고, 인공호흡기를 만지고.....

이 자리에 내가 있지 않아도, 누 군하는 나와 똑같이 할 일. 

그리고 안 그래도 살 사람, 내가 아니어도 살 사람을 무사히 살려서 사고 없이 수술을 마치는 일이 겨우 의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오늘은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다.


마치 드라마의 닥터 하우스처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냈으며 

(물론 아마 시간적으로 빨리 생각해냈으며. 에 가깝겠지만), 적절한 대처를 생각해내었고.

 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해 옮기어 문제를 해결했다. 


수술이 잘 끝나고 깨서 말도 하던 환자.

회복실에 가려고 옮기는 중에, 아무래도 잘 잡히지 않는 말초 산소 포화도가 찝찝했다.

움직이는 환자에선 종종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왠지 좋지않는 느낌에

옮기는 것을 중단시키고 다시 산소를 공급했다.

이유없이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할수있는 많은 방법들에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수치.

할수있는 것은 다 해봤으니 의심가는 것은 하나.


포터블 엑스레이 좀 불러주세요!


환자를 이대로 옮기면 안 될 것만 같았고, 이렇게까지 멀쩡한 환자가 숫자가 안 나오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담당 교수님께선 "꼭 그렇게 해야겠니? 그거 너무 여러 과에 부담 주는 일이다". 하신다.

끝난 수술을 빨리 끝내지 않고, 다른 일을 벌이는 것. 모든 것을 지체시키는 것.

혹여나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들어야 하는 비난.



탐탁지 않아하는 눈빛을 외면하며 사진을 찍었고, 의심했던 것은 기흉이었는데.

엥?@@


양쪽 폐가 모두 쪼그라들어있었다.

한쪽 폐는 기흉. 또 한쪽 폐는 물이 가득?

"저기 왜 물이 있지? 배를 수술했는데.."

하자 수술과에서 말한다


"아, 저희가 배에 항암제를 채워놓고 나왔습니다"

"배랑 가슴은 구분되어있잖아요? 배에 넣었다고 가슴으로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 아... 사실은 아까 배와 가슴이 구분된 막에 실수로 구멍을 내긴 했는데.. 금방 꿔 맸는데.. 이상하네요"


흉부외과를 불러서, 양쪽 가슴에 관을 넣었다.

기흉 때문에 쪼그라든 폐는 펴졌고, 다른 쪽엔 관을 넣자마자 항암제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상이 되었다.




해결하고 보니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하지 않았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만약에  발견하지 못한 채로 중환자실에 갔거나 회복실로 나갔으면 

그 사람은 오늘 안에 죽었을 수도 있을 것.


7명의 의사가 있었고, 3명의 마취과 의사가 있었지만

오롯이 내가 이 사람을 살렸다는 기쁨.

내 평생에 이런 느낌을 느껴볼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로. 


마지막 수술에서 있었던 일인데, 끝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 입구를 나오는데 

영화에서처럼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사람들이 줄을 쫙 서서 박수를 쳐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환자의 보호자도 없었고, 내가 그분을 살렸다는 것을 영원히 아무도 모르겠지만.


어느 친구가,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는 전공의 때 밤을 새워가며 외국 논문을 찾아가며 치료해서 살린 아기의 이야기를 30년이 넘게 하신다며 

의사라면 누구나 가슴에 묻는 환자와 평생의 자랑인 환자가 있는 것 같아. 

라는 이야기가 참 감명 깊었는데.


나도 오늘의 그 분이, 평생까진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자랑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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