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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1. 2016

살아야 할까. 살려야 할까

마취과 의사, 텐팅 뒤 단상

오늘 살아있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이따 저녁엔. 내일은. 왜 난 살아있어야 할까.


한동안 무척 괴롭혔던 질문이다.

내가 살아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일까?


죽고 싶다. 와 조금은 다른. 

나는 왜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가.

지금의 삶이 좋지만. 좋기에 내일 좋은 것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앞으로 고통의 시간만이 남아있을 수도 있는데

난 왜 계속 살아가야 할까.










자살률 1위의 공화국답게.

하루에도 몇 명씩 죽음을 시도하고,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이 병원에 온다.


내가 만나게 되는- 수술실에 오게 되는 사람들은,

큰 실패를 한 사람들이다.


깔끔하게 성공하거나, 무사히 실패한 게 아니라.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들.


지난달엔,

척추뼈가 부러져서 하지마비가 된 사람이 왔고, 수술하겠다는 컨택이 왔는데

너무너무도 강력하게 수술을 거부한다고 했다.

결국 그가 수술을 받아들이도록 만든 말은.

"수술 안 해도 죽지 않습니다"



이번에 온 사람은,

허리뼈도 아닌 목뼈가 부러져서 사지마비가 되었다.

팔다리만 기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자율신경계도 다 망가져서

바이탈 사인마저도 조절할 줄 모르게 되어,

혈압도 오르락내리락 체온도 40도가 넘어간다.



- 마취과에서 수술 시점을 결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수술을 빨리할수록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미미하고,

바이탈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명확하지 않으니 결정해주세요.



하고 컨택이 왔다.




나는 그동안 너무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안 좋으면 안 좋은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주어진 상황에 열심히 해보기만 했는데,

결정하라니까 멍.. 해진다.


- 어떻게든 결정하시면 좋든 나쁘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다.


- 그 말씀을 문서로 남겨도 되겠습니까.



아. 이 사람. 가망이 없구나.

수술과에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의식은 제대로 없지만,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으니 계속 아파하는 환자.

열 군데가 넘는 부러진 뼈.

그리고,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는 바이탈 사인.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려봅시다. 하고 허공에 울려 퍼지는

의무기록




이 고통 속의 환자는 무사히 깨어난다고 해도

이제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어진 채 더 이상 죽음조차 시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일까.




하지만.

환자를 보러 간 내 입에서. 


xxx 씨는 어디 계신가요.


속삭이듯 말한 환자의 이름이 작게 톡. 떨어지자마자

저 멀리서 벌떡 일어나서

잡고 있던 환자의 손을 놓고, 고개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까지. 머리를 숙이는 그 간절한 마음.













흔히 말하듯

비록 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도, 주변 사람들을 보고 살아.

하는 말이.


어쩌면. 그냥 비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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