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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12. 2016

어떤 날

마취과 의사, 텐팅 뒤 단상

- (따르릉) 마취과입니다
- 선생님 산부인과 1년차 xxx인데요 
( 급한 목소리, 큰 목소리..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는 울기 직전처럼 들렸다.)
- 네
- 타 병원에서 전원 오신 산모가 있는데... 애기가 안 보여요
-..... 네?.. 무슨 말씀이신지...



- 자궁이 파열된 것 같아요.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초응급
컨택하는 주치의는 계속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혈액검사는 했는데 아직 결과가.. 흉부사진은..
- 그만 말해도 돼요. 금식은요?
- 확인 안 되었는데.. 금식 안되었어도 저희는..
- 응.. 해야죠. 근데 우리도 알아야 대비를 하죠.. 일단 준비되는 대로 수술실로 올라오세요

차트를 열어보니 산모가 몸무게가 엄청 적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교수님이 ' 임신 몇 주인데?' 하고 물으신다. 
아.. 그걸 안 물어봤네... 자궁파열이라고 하니 당연히 만삭일 것으로 생각했다.


차트를 열어보니.. 임신 18주.. 나와도 아이가 살 수 없는 주수..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려도 환자는 올라오지 않았다. 
차트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바이탈 사인.

왜 안 오지? 환자 어떤지 보고 올까.



분만장에 가서 문을 여는 순간. 
병원이 떠나가게 울리는 울음소리.

-안돼.. 안돼.. 수술 안 할 거야.. 나 죽어도 돼.. 애기 포기 못해.. 수술 안 해..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올라온 듯. 아직 응급실 이동 침대 위의 여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울음소리는 수술실 앞으로 옮겨졌다.

- 환자분 마지막 식사 언제 하셨어요?
- 저 수술 안 해요. 말 안 할 거예요.


수술실 들어와서 수술 침대로 옮기려는데
원래 있던 침대 난간을 잡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산모.

울면서 우리에게 애원한다.
-저 수술 안 해요. 안 할 거예요. 동의 안 했어요... 본인이 동의안 했는데 어떻게 수술해요. 교수님 한 번만 더 만나게 해주세요. 싫어요. 남편 불러주세요. 오빠.. 나 싫어..



끝이 없었을 난임 검사. 
문제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내 몸을 수술하면서까지 기다린 아이. 
여러 번의 인공수정 후의 성공이란 기록은 그 횟수만큼의 하늘이 무너짐을 경험했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18주.. 이미 5달을 품은 아이. 
그제까지도 살아있던 아이.


- 애기 나오면 인큐베이터에서 살릴 수 있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아이는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있어요.. 다른 선택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대로 집에 가시면 목숨이 위험 해지 실수도 있어요
- 집에 갈래요.. 저 수술하면 이제 임신하기 더 어려워지는 거잖아요..
-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수술은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더 이상의 협상을 포기하고 조용히 흐느끼는 산모. 
아까의 그 절망적인 울음이 가장 슬플 줄 알았는데.. 
소리 없는 흐느낌은 더 슬펐다.


나도 울고.. 산부인과 주치의도 울고.. 고개 들어보니 우리 전공의도 눈물이 가득 차 빨개진 눈으로 마스크를 잡고 있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아가가 차가운 스테인리스 그릇에 놓였다. 가끔 몇백 그람으로 태어나는 아가들을 볼 때면 너무 작고 사람보다는 아기동물 같은 느낌이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어린 이 아가는 왠지 더 사람 같고, 비유적 의미가 아닌 진짜로 천사 같았다. 정말 천사가 되어서 떠나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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