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처음 의사
처음 마취과 턴을 한 달간 돌고 쓴 글
1.
나름 힘들었지만
정말 마취과는 나랑 잘 맞는구나. 느꼈다
어떤 과가 '이렇게 나에게 꼭 맞춘 듯 맞아..'라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은 과라서,
그래서. 그냥. 나랑 잘 맞더라~ 끝.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도 좋았고
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로젯이었지만.
큰 사고 안치고 크게 혼난 적 없이 한 달 무사히 넘겨서 좋았다
그리고 마취과 모니터 보는 법과
마취된 무기력한 환자의 바이탈을 다루는 법을 조금 알게 된 것도
좋아 ^^
그리고. 파견 병원에서 한 달 더 돌고 쓴 글
2.
파견 병원의 수술장은 정말 작다. 이곳의 수술방은 겨우 10개.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것은 방송으로 이루어진다.
전화기 들고 하는 방송
학생 때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중앙에 마약 주세요~" 하고 울려 퍼지는 방송이었는데.
이제 내가 매일 같이 하게 되는 방송.
엊그젠 수술하고 있는데
"마취과 7번 방 H입니다" 하는 방송이 들렸다
H는 help방송이다. 보통은 인턴이 레지던트한테 하는 help.
7번 방은 신경외과방이기 때문에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가신다.
그렇기 때문에 좀처럼 help가 나지 않는 방이다.
help방송 나면 교수님들까지 가용 인력이 다 뛰어가기 때문에
방송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인데,
조금 있다가 S교수님 목소리의 방송이 들렸다
" H 교수님 7번 방으로 와주세요"
CPR인가... 교수님이 교수님을 부르시다니..
조금 있다가 담배 냄새 엄청 풍기시며 H교수님이 오셨다
" 아씨~ 환자 하나 죽었다.. "
근데 그 순간 진짜 짠.. 했다
전날 회식에서 선생님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도 마취과는. 적어도 사람을 살리잖아
대동맥 터져서 오는 정도 아닌 다음에야 회복실까지는 무조건 살려서 보내잖아-
죽는 사람을 어지간히 보는 과가 있고
적어도 자기 손에선 안 죽이는 과가 있다
마취과는 자기 손에선 안 죽이는 과인데.
이 사람들...
환자 죽는 거 안 익숙하구나
어쩌면 그거 보는 게 싫어서 이과를 선택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구나.
마취과는 정말 종종 전지전능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과다.
환자 몸에 흐르는 물한방울, 성분하나하나, 숨과 의식을 컨트롤 하고
죽음에 가까이 만들었다가 다시 살리고..
그런 점은 정말 매력적.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결코 사람의 목숨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과인데,
수술방의 table death라니
오. 정말.
................ 예감했던 걸까?
전혀 마취과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인턴 때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마취통증의학과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