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 그리 급한지 자판을 서둘러 두드렸다. 방금 스친 한 줄을 붙잡으려고 지우고 쓰고, 다시 고쳤다. 커서는 주인을 닮아 화면 위를 분주하게 떠돌았다. 마침표를 찍기 직전 눈이 떠졌다. 꿈속에서 글을 쓰다 잠에서 깬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뭐였더라. 날아가기 전에 녹음을 눌렀다. 마른침으로 목을 축이고 걸걸한 목소리로 기억나는 대로 더듬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꿈에서도 하게 되면 그다음 단계가 열린다는 말을, 영어를 한창 배울 때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영어로 꿈꾸는 날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정말로 잠결에 영어 문장을 중얼거리고 일어난 아침, 어딘가 막혀 있던 벽 하나를 밀어 넘어뜨린 사람처럼 들떴다. 실제 실력이 도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배짱 하나는 분명히 커져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 잠결에 글을 쓴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마감에 쫓기는 사람의 노동에 가까웠다. 평소 일주일에 두 꼭지도 겨우인 사람이 지난주 다섯을 몰아 쓰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속이 메슥거렸다. 머릿속을 박박 긁어낸 뒤 멍했다.
"당분간 글 쓰나 봐라."
그 선언을 되뇌며 자기 전에 <국경 없는 미술실>을 펼쳤다. 가면 안 된다는 동네, 음침하고 사건사고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기피지역 다문화 중학교에 부임한 미술 교사의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초학력에 미치지 못했기에, 신경아 선생님은 미술 수업만큼이라도 기를 펴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 붓을 잡아본 아이들의 손끝에서 서툴지만 저마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범지대 한가운데서 동화 같은 장면이 피어나는 이야기에 홀린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꿈에서, 나는 그 책의 서평을 쓰고 있었다. 신경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잘 그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느끼는 대로 종이 위에 꺼내보게 했다. 잘 그리지 못해도 종이 앞에 앉아 그릴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도 그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이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게 싫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움츠러들기 시작한 순간만 또렷하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뒷벽은 환경미화의 공간이었다. 오십 명에 육박하는 반 아이들의 스케치북이 다섯 줄로 나란히 걸렸다. 잘 그린 그림은 위쪽에 , 덜한 그림은 아래쪽에. 내 그림은 늘 맨 밑, 뒷문 가까이,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자리였다.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눈치를 챈 건지, 시간이 지나며 그 층위를 이해한 건지, 작품이 바뀌어도 올라가지 않는 줄을 보며 나는 조금씩 작아졌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물어본 적 없는 수업이었다. 그저 해내야 했다. 어떤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림은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비단 미술만 그랬겠는가. 좋아할 틈도 없이 잘해야 했던 것들이, 돌아보면 한둘이 아니었다.
의욕이 완전히 꺾인 4학년 때였다. 한 번은 낙엽 찍기 숙제가 나왔다. 물감이랑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 옆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물으셨다.
"지영아, 와이라고 있노. 이게 다 뭐고?"
"미술 숙제예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뭐 이런 걸로 골을 싸매고 있냐며 정원에 나가더니 갖가지 낙엽을 한 아름 가지고 들어오셨다.
"잘하고 모하고가 어딨노. 그냥 허는 거제. 일로 가와 봐라. 같이하자."
할머니는 시무룩한 나를 달래며 낙엽에 색을 묻혀 요리조리 찍어나갔다. 배운 적 없는 손이었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할머니가 하도 재밌게 하길래 나도 슬그머니 그 옆에서 낙엽 위에 색을 발라 눌렀다. 순식간에 한 장을 다 완성하고도 더 하고 싶어 이번에는 과감하게 내 마음대로 했다.
"어허이, 이 봐라. 작품이네."
그 숙제는 셋째 줄에 걸리는 쾌거를 이뤘다. 내 작품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은 어김없이 밑줄로 내려갔다. 수업시간은 점점 더 두려워졌다. 동네 미술학원도 몇 달 다녀보았지만 이내 관뒀다. 못 그려서 흥미가 없는 건지, 흥미가 없어서 못 그리는 건지. 그렇게 그림과는 담을 쌓았다. 미술 시간은 고등학교 교문을 나서는 날까지 내내 버거웠다.
다행히 그 시절을 혼자 버틴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만화가가 꿈인 친구가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내 앞에서 쓱싹쓱싹 붓질을 건네주던 진희는 내게 피카소보다 위대한 화가였다. 나는 그 마법 같은 붓에 기대어 겨우겨우 미술 시간을 건넜고, 진희가 끙끙대는 만화 스토리를 대신 써주며 은혜를 갚았다.
미술 시간은 졸업과 함께 끝났지만, 여전히 손으로 하는 일에 겁먹었다. 직접 만들고, 고치고, 꾸미는 일 앞에서 늘 한발 물러섰다. 친구가 뜨개질로 뭔가를 만들어 선물하면 감동해서 난리를 쳤다. 한 번은 수세미를 받고 연신 감탄하니까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야, 그거 옷 아니고 수세미야."
손에서 무언가가 태어난다는 게 나에겐 늘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직접 못 만드니 사야 할 것이 많았고, 열 손가락은 언제나 하릴없이 멈춰 있었다.
그런 내가, 매일 자판 위에 손을 얹는다. 글은 물론 머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며 한 장을 채워나갈 때, 이 손가락들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당분간 글을 쉬겠다고 다짐한 지 삼 일째 되는 새벽,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걷어찼다. 꿈속에서 고치던 글귀를 까먹을 새라, 반쯤 감긴 눈으로 노트북을 열고, 화면이 켜지기도 전에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부팅음이 울리는 동안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첫 줄이 뭐였더라. 녹음을 열어보았다.
해야 해서 하는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눈뜨자마자 쓰고 싶은 아침이 생겼다. 생각보다 큰 사건이다. 열 손가락이 거들고 있다.
꿈속의 서평은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그 마침표는 꿈이 아니라 여기, 깨어 있는 손끝에서 찍으면 된다. 할머니가 낙엽을 눌러주시며 말씀하셨듯이.
"잘하고 모하고가 어딨노. 그냥 허는 기제."
그 말이 자판 위에서 되살아난다. 잘 쓰고 못 쓰고 가 어디 있나. 앉으면 마음이 비워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온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한 칸 위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