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왜 그래?"
나는 이 분야에 귀신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엄마와 전화를 하다 보니 숨소리만 들어도 그날의 기분을, 컨디션을 짚어낼 수 있다. 콧소리가 살짝 무겁거나, 말끝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늦게 내려앉으면 어디가 좋지 않은 날이다. 그날이 그랬다.
"감기기가 좀 있어서. 약 먹고 누웠어."
주말에 친정을 내려갈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편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먼저 앞질러 내려갔다.
"독감은 아니고? 병원을 가야지."
"안 그래도 너거들 신경 안 쓰게 내일 눈 뜨자마자 갈라 한다."
자식 걱정 시킬까 언젠가부터 기운이 가라앉는다 싶으면 링거를 맞으신다. 내가 귀에 박히도록 말한 것도 있지만, 당신이 자리에 눕는 순간 자식들이 먼저 힘들어진다는 계산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넘지 않았을 병원 문턱을, 하물며 돈 많이 드는 처방을 이제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엄마에게 그곳은 치료의 장소이기 전에 자식을 안심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그 주말, 친정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스크를 쓴 얼굴이 보였다. 밖도 아닌 집 안에서. 그것도 혼자 사는 집에서 자신의 숨을 꼭꼭 틀어막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반갑다고 반달이 되어 맞았지만, 코가 꽉 막힌 목소리가 배어 나왔다.
"괜히 왔다가 옮아가면 안 되잖아."
앓는 사람이 걱정하는 건 자신의 기침이 아니라 딸의 몸이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 엄마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일일이 반찬을 두 군데로 나눠 덜어 나를 건너편에 앉혔다. 쉬어야 할 환자한테 내가 들이닥쳐 짐을 보탠 꼴이었다.
우리가 늘 주고받는 대화였지만 그날 다시 들으니 엄마의 말에는 다부진 결기 같은 것이 실려있었다.
"네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진 내가 돌봐야지. 내 나이쯤 되면 그때는 괜찮겠지."
돌봐야지.
엄마는 아직도 나를 챙기고 보살핀다. 그 지극함은 해가 갈수록 더 촘촘해진다. 살핌이 업인 사람처럼, 그것이 삶을 움직이는 연료인 것처럼.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아들의 나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생각한 적이 있다.
'아들이 몇 살 쯤이면 어떤 역경이 닥쳐도 의연할 수 있을까.'
그 날에 이르기 전까지는 뒤에서 버팀목이 되고 싶다. 칠순을 넘긴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심정과, 내가 아들을 바라보는 속내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도 결국 같은 물줄기다.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돼. 말 안 해도 알지?"
"그라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걱정 마. "
'네 마음을 다 알고 있으니 내가 알아서 잘하겠다'는 약속. 그 말은 불안을 풀어주면서도 곧 먹먹하게 만든다.
건강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도 어느 사이 달라져 있었다. 특별히 제 몸을 살피지도, 탈이 나도 한참 버티다 뒤늦게 날을 잡는 쪽이었다. 잔소리가 박힐 나이는 훌쩍 지났는데도 “어서 자라고.” 소리를 질러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오랜 연구 대상이다.
아파트 단지 뒷길의 실개천을 따라 나란히 걷던 어느 저녁, 한마디 꺼냈다.
“당신이 쓰러지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가족들이 탈 없이 잘 지내서였어.”
모처럼 산책길에 바람이 좋았다. 남편에게 슬쩍 전하고 싶었던 것이 우리의 무탈한 날들에 대한 감사인지, 그것이 깨질까 봐 품고 있던 두려움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목 안이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그래, 나 관리하잖아. 걱정 마.”
나란히 걷는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로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했다. 그 장면을 눈에 꾹 눌러 담았다.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남편과 동네 행정복지센터로 운동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늘 퇴근 후에도 회식이나 골프 회동으로 바빴던 그가 운동을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 놓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저녁 있는 삶'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주 3회를 빠짐없이 채우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재촉하지 않아도 "오늘 가는 날이지?"라고 물어올 때 은근히 든든했다.
얼마 전에는 남편의 회사 동료가 출근길에 쓰러져 뇌경색 진단을 받은 일이 있었다. 몸이 보내온 미세한 신호를 귀 기울였어야 했다는 당사자의 말이 내 잔소리보다 훨씬 실감 나게 남편에게 꽂힌 듯했다.
며칠 전, 남편은 기침이 가시지 않고 가슴에 통증이 있다고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진료를 예약했다.
"폐 사진을 한번 찍어봐야겠어."
시무룩하게 나서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날 밤, 이상 없다며 돌아온 남편은 현관에서부터 신발 벗는 소리가 가벼웠다.
"담배도 끊어야겠어."
매일같이 피던 담배와의 절연을 그는 처음으로 입에 올렸다. 그 말이 공중에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서른 해를 골수에 밴 습관을 놓겠다는 걸 선뜻 믿기 어려웠다. 대수롭지 않은 척 고개만 주억거렸다. 아니라 다를까, 작심삼일은커녕 하루도 못 넘겼지만, 이것도 시작이라면 시작이지 하고 그냥 웃고 말았다.
주말에 점심 외식을 하고 나오는데 바로 앞에 복권방이 있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로또 자동번호 밖에 아는 게 없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거들었다.
"연금복권이라고 있는데, 1등 하면 700만 원씩 20년 동안 나온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마지막으로 복권을 산 게 언제였더라. 친구들과 들른 식당 맞은편이 복권 명당이라길래 재미 삼아 사 본 몇 년 전이었다.
받아 든 로또 용지 위에 연금복권도 기분 좋게 얹었다. 아직 번호 확인도 안 했는데, 주머니에 넣는 손이 보험증서라도 다루듯 공손했다.
20년.
내다보기엔 아득하기만 했던 숫자가 조금씩 맞이할 만한 시간으로 변해 간다. 무탈하게, 아프지 않고, 내일도 여기 있겠다는 다짐. 고삐 없는 말처럼 내 뜻대로 안 되는 인생이지만, 내 몸 하나는 간수하겠다는 결의쯤은 다져 본다.
주머니 속 복권이 걸음에 맞춰 바스락 거린다.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