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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23. 2024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낡음이다

월전 장우성의 깨어있음

대문자 J 인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선호한다. 계획된 만남은 안정감을 주는 반면, 의외의 만남은 짜릿한 깨달음을 준다. 쌀과 도자기의 도시로 밖에 몰랐던 이천에서 짜릿한 전율을 오랜만에 느꼈다.      


이천에 갈 일이 있어 설봉공원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공원의 호수 산책로가 괜찮다고 하여 점심 후 산책을 나섰다. 그러다 산책로 끝에서 이천 월전시립미술관을 발견했다. "이천이 유네스코 창의도시 아니냐, 기본은 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이철주 화가의 '꽃-보다'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시립미술관의 이름인 월전 장우성이라는 인물이었다. 정우성은 알아도 장우성은 몰랐는데 한국화의 대가이다. 평생을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하며 한국화단을 이끈 20세기 대표 작가라는 소개가 단박에 이해되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단군일백이십대손 2001


월전은 1912년 생인데 '단군일백이십대손'은 2001년도 작품이니 무려 90세에 그린 그림이다. 2005년에 작고하셨는데 이 생 마감 4년 전까지 작업을 했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90세 노화백이 그린 감각에 또 한 번 놀랐다. 월전의 제자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동물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새를 그릴 때도 보지 않고 본인의 연상만으로 완벽하게 그리는 것을 보고 천재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 그림과 글도 일필휘지 했을 것이다. 월전은 한학자 집안의 자제로 어려서부터 글을 공부한 탓에 시서화에 능했다. 2024년에 보는 시서화라니 심지어 글도 재밌다.      


단군일백이십대손     


우연히 묘령의 아가씨를 만나보니

언뜻 보기에 외국인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금발 붉은 입술에 색안경 쓰고

청바지에 배꼽까지 드러냈다

방년 십 대에 성격도 쾌활하고

마치 평원을 달리는 야생마 같다

연거푸 세 개피 권련을 피우고

커피 네다섯 잔을 마신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도 대답 없고

이름을 물으니 미스한이라고만 한다

점차 친근히 느껴져 가계를 물으니

자칭하여 단군의 백 대손이라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보자 악수하려니

붉은 손톱이 꼭 매발톱 같다

돌아와 붓 들어 그림으로 그려보노라니

문득 세태의 상전벽해에 놀란다

내게 일찍이 단군의 후예란 자잘한 원고를 쓴 것이 있었고

이제 이같이 만화를 시도해 보았으니 보시는 분들의 일소와 질정을 청하는 바이다

       경진(200년) 겨울 89세의 늙은이 월전이 칠하다   


백 년 전 사람이 백 년  후 사람을 본 후기가 상품평처럼 쓰여있는 게 흥미롭다. 작가의 호기심이 전달된다. 천재는 늙어도 천재인가 싶다. 전시관 내 선생의 영상에서 답을 찾았다.    


"늙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낡음을 두려워하라. "


평소 월전의 철학이었다. 그의 작품은 왜색풍에서 벗어나 서구적인 인체와 묘사를 도입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방향의 모색하며 현대 한국화의 역사와 함께 했다.


화실, 1943


더 놀라웠던 점은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충무공 이순신의 그림이 바로 월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자란 충무공, 강감찬, 정약용, 유관순 등의 표준영정을 그린 사람이 월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문화훈장 금관장을 받으며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는 다 누렸던 그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화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중심인물인데  교과서에도 안 실리고 평가가 조용해서 찾아보다 친일논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전의 친일화가 시비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4회 연속 특선해 추천 화가가 됐고, 일제의 관제 성격이 강했던 ‘반도총후미술전’에도 출품한 점 때문이다. 또 미술전에 입상한 후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했다는 <매일신보>의 기사가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모든 미술학도들이 화가의 길로 입문하는 유일한 등용문인 ‘조선미술전람회’ 공모전에 응모하고 그 수상의 대가로 한 답사가 친일화가로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많다고 한다. 해방 직후 1945년 8월에 친일화가를 배제하고 세워진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친일행적이 있었다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행적을 두고 여러 가지고 공방이 있었지만 결론은 없고 시립미술관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그가 친일파가 아니라면 친일파로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친일파라면 글은 내려지고 언젠가는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청년도, 1956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70대 시인 이적요가 한 대사로 유명하다. 늙음을 한탄하며 젊음을 탐했던 이적요에게 전해주고 싶다.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낡음이라고. 늙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이 자연스레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낡지 않은 자세로 깨어있는 것, 그것은 얼마든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호기심을 가진다면. 안티에이징 같은 외면의 노화에만 신경 쓰지 말고 신선한 생각을 가지고 멋있게 늙어가야겠다. 고마워요 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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