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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30. 2024

반고흐 불멸의 slow starter

융과 고흐 -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최애 화가 반고흐의 작품이 12년 만에 11월 29일 한국을 찾는다는 기쁜 소식에 유럽에서 만난 반고흐의 추억을 뒤적여 보았다. 암스테르담과 파리, 런던에서 고흐의 작품을 원 없이 봤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불멸의 반고흐 전은 반고흐 뮤지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흐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작품들이라 의미가 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고흐 작품들은 여러 연작의 초벌작품에 해당되는 작품이 많아 더 기대가 된다.      



사람들은 왜 고흐에 열광할까? 그의 작품의 감정적 깊이, 시각적 강렬함, 작품 뒤에 숨겨진 비운의 삶이라는 조합이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고흐가 정확히 어떤 질환을 앓았는지 130년 전이라 알 수 없지만 측두엽 간질, 양극성 장애, 혹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반고흐의 '고문받는 예술가'의 서사는 그의 작품을 시각적으로 매력적이게 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과 다르지 않아 더욱 울림이 있다. 여러 방황을 하다 27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한 고흐의 늦은 시작에 나는 마음이 끌렸다.

암스테르담 반고흐 뮤지엄


고흐는 17세에서 23세까지 미술상에서 일했고, 25세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으나 1880년 우리 나이로 서른이 가까워서야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야말로 slow starter였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해바라기(Sunflowers)와 같은 생동감 넘치는 후기 인상주의 그림을 포함한 반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화가 경력 10년 안에 이룬 것들이었다. 그는 1890년 사망하기 전 10년간 875점의 회화와 1000점이 넘는 데생을 그렸다. 시작이 늦었다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자신을 불태워 누구보다 의미 있는 불멸의 작품을 쏟아냈다.

     

파리 몽마르뜨 언덕 반고흐 집 (동생 테오와 1886-1888 거주)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개성화는 정신의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측면을 통합하여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자기실현'의 과정이며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평생의 여정이라고 했다. 융은 중년기를 강조한 학자인데 중년기에 비로소 사회적 요구에 반응하는 페르소나(가면)를 내려놓고 자기실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이 걸리는 자아실현이라는 과업을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성취하도록 강요받는 경향이 있다. 자아실현이란 과정이며 각 개인의 속도와 여정이 다르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과도한 압박감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 있다.

 

내셔널갤러리 <의자>,1888


고흐 생전의 그에 대한 평가는 사는 내내 그를 옥죄었다. 그의 그림의 가치를 모르던 사람들은 사람구실 못하는 이의 작품이라며 마구간에 처박아 두었다. 그러나 그의 직업적 방황도 모두 그의 작품 속에 투영되어 화가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일조했다. 가난한 광산 지역의 선교사로서의 그의 초기 사역은 그의 후기 예술, 특히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측면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상에서 7년간 일했던 경험은 다양한 그림을 접하는 기회의 창이 되어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영향을 끼쳤고 1886년 파리로 거쳐를 옮겨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화가가 되기 전 그의 방황조차도 고흐의 화가로서의 정체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


융의 중년 개념과 연결해 보면, 고흐는 자아실현이 반드시 이른 나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독창적인 스타일과 강력한 메시지를 개발했다.


내셔널갤러리 <해바라기>


한 사람의 자아와 가치관이 정립되기까지는 사람마다 다른 속도를 가진다. 우리는 남들 갈 때 대학 가고, 결혼하고, 이른 나이에 자리 잡고 성공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남보다 늦는 것'을 패배자로 본다. 융은 중년기를 개인의 삶에서 중추적인 시기로,  내면의 자신을 통합해 내고  정신적 성장에 집중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는데  내가 중년이 되어보니 이해가 된다. 나는 이제야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이전의 나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나의 페르소나였다.


오르세 미술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은 어떻게 될까      by 반고흐       


고흐를 보면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님을 느낀다. 육체는 없어져도 생명은 영원하다. 그는 불멸의 화가가 되어 그가 낳은 불멸의 작품 속에서 우리와 호흡하고 있다. 광기 어린 정신에서 뽑아낸 격렬한 필치는 “좀 늦어도 괜찮아. 좀 모자라도 괜찮아”라고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슬로우 스타터여서 더 좋은 반 고흐다. 좀 늦으면 어때. Late bloomer를 격하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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