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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열 사람에게만 열리는 한옥 미술관

경주 더안미술관

by 송지영

하루에 단 열 명. 사전예약으로 오직 열 사람만 초대하는 한옥 미술관이 경주에 있다. 그것도 무료로. 하루 한번, 오후 2시에 귀한 문이 열리는 곳 - 바로 더안 미술관이다.

“경주에서는 삽질만 해도 유물이 쏟아진다.”

우스갯소리처럼 전해지지만, 이곳에선 농담이 아니다. 천 년 신라의 심장, 경주는 발밑 어디에나 겹겹의 시간이 잠들어 있다. 도로를 내고, 집터를 다지고, 하다못해 작은 배관 하나를 묻으려 해도 땅을 파내는 순간, 수천 년 전의 손길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공사보다 발굴이 먼저다.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는 삽 한 번 내리꽂을 수 없다. 경주는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시간의 매듭을 품고 있다.

그 경주 한복판에, 다소 뜻밖의 미술관이 올해 모습을 드러냈다.

130년 동안 난임 치료로 전국적 명성을 쌓아온 대추밭백한의원. 증축을 위해 진행한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예상치 못한 유구(遺構)가 발견되었다. 결국 그 땅은 사적지로 지정되었고, 한의원은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백진호 5대 원장은 한의학이 닿지 못하는 영역까지 예술로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건축은 무려 9년이 걸렸다.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지속 가능한 공간을 세워 올리는 긴 여정이었다.

더안 미술관의 컨셉은 고대 그리스 테베 도서관에 새겨진 문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혼을 치유하는 곳”

스페인의 상파우 병원이 내세운 신념, “예술로 치료한다”는 말처럼, 더안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회복과 명상, 관조가 한데 어우러진 치유의 집을 구현하고자 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고요히 귀 기울이는 곳. 회복은 때로 약이 아니라 느긋한 시선과 고요한 숨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미술관은 경주의 200년 된 전통 정자, 삼괴정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

김재경 건축가는 삼괴정의 휜 대들보에서 착안해 곡선형 목재 아치 구조를 도입했고, 이 우아한 곡선의 천장은 전통 한옥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조형물로 탈바꿈시켰다.


맞물린 곡선들이 지붕을 떠받치는 혁신적 설계는 미적 아름다움과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레 위로 끌어올린다.

1층과 지하 1층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단정하고 절제된 동선으로 짜여 있어, 관람객은 점점 외부 세계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끈다.

개관전시의 영예는 배병우 사진작가에게 돌아갔다. 배병우는 45년 동안 경주의 소나무 숲을 거닐며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빛의 언어로 길어 올렸다. 그의 렌즈에 담긴 소나무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과 고요한 숨결을 기록한 명상에 가까웠다.

2005년,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을 구입한 것을 계기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 수많은 전시를 열며 세계 무대에서 자리매김했다. 2023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장을 수훈하며, 그의 작품세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영기해송(靈氣海松, 영묘한 기운을 품은 바닷가의 소나무)’를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배병우 작품의 내밀한 숨결을 치유라는 관점에서 마주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삶과 자연, 존재를 향한 고요한 응시를 소나무의 형상으로 이야기해 온 그의 사진은 더안 미술관의 개관전시로서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듯하다.

전시 관람이 끝나면, 리셉션과 카페로 쓰이는 '관조의 집'에서 한의원에서 달인 따뜻한 차한잔을 내어준다 마지막까지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마음 한켠이 묘하게 간질거린다.

고요히 앉아 차 한 모금을 머금으면 창 너머 초록빛이 부드럽게 스며들어온다.

한 시간 남짓의 호사가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 안쪽에 수분이 꽉 채워진 기분이다. 특별한 공간에서 보낸 다정한 시간이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선명한 여운을 남긴다. 우아한 한옥과 독특한 천장, 구불구불하고 수직적인 소나무의 형상이 일상이라는 낡은 표면 위에 고운 흔적 하나를 남겼다.


관람팁: 네이버에서 지정된 예약오픈일에 맞춰 사전예약하셔야 입장가능합니다.

1인 2매까지 예매가능

매주 수, 금 휴무



https://naver.me/xwmgI6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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