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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an 07. 2021

인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이 들까?

새해 첫주, 2021년의 마음

  “해내려고 평생 애를 썼는데, 결국 못했네.”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누워서도 끝끝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오늘 하루를 가치있게 살아보라고 어디선가 건넨 질문이었다. '죽기 전에 내 삶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내가 떠올린 장면이 그토록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난해, 시시때때로 노년의 내가 누워서 원통하게 울고 있는 장면이 불쑥불쑥 떠올라 마음을 괴롭혀댔다. 가끔 자기 직전에 그 장면을 생각하면 으스스했고, 그런 날엔 잠도 안 왔다. ‘그 일’은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한데도, 나는 이상한 욕망에 시달렸다. 뭔가 해야 되는데. 이 좋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선 안 되는데.


  2020년에는 네 평 남짓한 방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외주 작업을 하고 있으면, 밥 먹을 시간 빼고는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든 공허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SNS에는 일터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으로 출렁출렁 하루가 요동치며 나아가고 있는데, 이 좁디좁은 나의 세계는 너무나 적막했다. 우리의 시간은 모두 다르게 흐른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는 고여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늘 촉박했다. 한해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나는 나에게 너그럽지 못해, 저 무서운 장면까지 상기시키며 나를 재촉했다. 

 

  정말 그럴까? 

  마지막 순간에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하며 원통해할까? 


  2020년의 마지막 날,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유키즈 온더블럭>의 ‘시작과 끝’편을 봤다. 거기 36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자기님이 출연했다. 그에게 올해는 상실의 해였다. 정년퇴직도 전에 갑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낸 분이었다. 은퇴 후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두었다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 나니 “모든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없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맞딱뜨린 상실감이 전해져서 보는 내내 정말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는데, 그 ‘의미가 없다’는 말이 해가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말을 곱씹으면서 의미의 무게가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생각했다. 의미는 결코 고정불변한 가치가 아니었다. 만약 하루아침에 돈이나 건강으로 인한 곤란이 닥친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고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그때도 의미있을까? 성장, 꿈, 정의... 이런 의미있는 단어들이 그때도 의미가 있을까? 나는 곧바로 눈앞에 위기를 넘기기만 간절히 바랄 것이다. 이미 2020년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큰 곤란을 겪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내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기만을 빌었다. 매일 아침 해결할 수 없는 압박감으로 눈뜨지 않기만을 빌었다. 그때는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도, 책도 내게 힘도 기쁨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떠올리기는커녕 매일 누렸던 일상과 행복을 그리워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식탁에 앉아 남편과 하루에 있었던 일이나 생각한 것들을 나누며 먹는 저녁식사를, 느즈막히 동네 둘레길을 산책할 때면 마주치는 분홍빛 노을을, 추운 날 밖에서 마신 따뜻한 라떼 한잔을 그리워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꽉 조인 듯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글을 쓸 때도 내 시선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 먼저 닿았다. 여전히 불편한 상황은 그대로 있고, 이루지 못해 서러운 게 많고, 나는 작년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있지만 예전처럼 조급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여전히 꿈도 욕망도 성장도 내게는 너무나 의미있는 것들이지만, 조금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됐다.  


  올해 나는 이제껏 내가 소홀하게 여긴 나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말해야겠다. 올해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다듬고 가꿔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미 내게 있는 것들이 있다.


어설플지라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을 지라도, 부족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안다. 나는 올해 그런 일에 내 시간과 마음을 쏟아볼 예정이다. 행복-이라는 말을 낯간지러워서 쓰지도 좋아하지 않지만, 올해는 무심코 내 곁에 놓여있는 작은 행복들을 실감하고 누리고 싶다. 대단한 일이 생기지 않아도 기쁜 하루를 보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에게 너그럽게 대하며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오늘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다 행여 또다시 마음에 균형을 잃었을 때, 여기 와서 내가 쓴 글을 읽어야지. 


올해의 계획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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